수천 개의 거친 표면들이 사나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속에는 보일 듯 말 듯, 자신의 얼굴을 숨긴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은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수척한 표정이었다. 어떤 이들은 비스듬하게 얼굴을 돌린 채 상념에 젖어 있었고, 어떤 이들은 커다란 상처를 감내하기 위해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장은우 화가를 만났다. 그녀는 소외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인간들을 서로 대면시키면서, 곪아 터져 가는 상처를 씻어내기 위한 의식을 진행 중이다. 서로 응시하고, 소통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자는 의도다.
"현대인들은 권태와 무관심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트렌트화면서 인간은 소외되고, 한편으로는 자신을 소외시키고 있죠. 그 소외와 무관심에서 저는 저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바라봅니다. 인터넷이나 매스컴의 발달하면서 시선이 자꾸 외부로 향하고 있거든요. 저는 사람들 개개인을 응시하면서, 서로의 시선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고 싶습니다."
장은우 화가의 그림 속에는 진중한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내가 그녀를 만나려고 했던 것도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행동하면서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렇게 봐 달라는 무언의 요청을 하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내면의 모습과 차이가 있지만 인간은 의식적으로 자신을 포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포장은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떨어져 담담하게 응시하고자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겉으로 보이는 나와 진정한 나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이렇듯 저의 작품은 대상의 본체를 보기 위해, 대상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오랫동안 응시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을 그림으로 형상화하고, 또 거기에서 출발하는 작가의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더욱 깊게 다가갈 수밖에 없다.
작품들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궁금하다.
"롤러에 실을 묶고 한지를 문질러 거칠게 만듭니다. 그리고 종이를 덧붙이고 떼어내는 작업을 서너 번 반복합니다. 이것은 서로의 연결고리가 쌓여가면서도,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비애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작업이 많이 힘들겠다고 말하자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힘들지 않다"면서 "가장 힘든 점은 재정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명성이 있는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화가들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도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지원공모전을 통해 재정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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