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노해율 조각가 - 원형 조형물들이 만들어낸 광휘

이동권 2022. 9. 13. 00:03

노해율 조각가 ⓒ정택용


찍. 찍. 덜컹. 덜컹. 서늘하고 딱딱한 사각형의 전시장을 흐물흐물 녹여버릴 만큼 즐겁고 얄궂은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일까?

사방에서 원형 모양의 도형들이 하염없이 돌았다. 잘 다듬어진 회색빛 조형물들이 어디론가 제멋대로 굴러가듯이 불규칙하게 움직였다. 희고 화사한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과정을 담아낸 초고속 카메라의 영상이 갑자기 떠오른다. 금방이라도 회전하는 조형물들이 커져가면서 벽을 이탈해 내 앞으로 다가올 것만 같다. 

잠시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노해율 조각가는 말했다.

"전시장을 고리타분하고 지루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품위와 질을 유지하기 위해 고급스럽게 가져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전시장에 들어와서 한 번 쓰윽 훑어보고 나가거나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인사하고, 악수하고 그냥 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관람객과 함께 즐길 수 있고,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전시, 그런 것이 좋습니다."

노해율은 움직임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 모습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불규칙을 통해 자연스럽고 편안한 이미지를 구현하고 싶었다. 그는 또 '함께'를 좋아했다. 혼자 작업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함께'하는 작업도 실험해보고 싶었다는 것.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하나로 분리되지 않고 전시장 전체가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거대한 세계로 보였다. 이러한 발상은 그의 몇몇 작품에서 두드러진다. 무채색의 원형 조형물에 천을 붙이고, 자개를 붙인 칼러 조형물이 특히 그러했다. 플라스틱 관에 천을 붙인 작품은 강현정 패션디자이너가, 자개를 붙인 작품은 전통 액세서리나 장식품을 만드는 회사 '가와 코리아(Kawa Korea)'의 진병석 디자이너가 함께 했다.

그의 작품은 중독성이 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조형물들은 나를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혹자는 키네틱 아트의 예술성에 대해 어렵게만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매우 단순했고, 쉽게 전이됐다. 바로 이러한 점이 중독을 일으키고 있었다. 키네틱 아트는 동력에 의해 작품이 움직이면서 운동성과 시간성을 표현하고, 거기에서 비롯된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미술이다.

"간단한 도형들을 키네틱(kinetic)을 이용해 살아있는 생명체로 만들어내는 것이 제 작품입니다. 결과물이 복잡해 보이고 의도하지 않았던 점들도 있지만, 제가 만든 작품은 매우 간단한 것이죠. 동그란 입체물에 운동성을 준 것뿐인데, 이 움직임 때문에 특별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노해율 조각가의 작품은 위엄이 있다. 단순함이 만들어낸 광휘는 복잡함이 주는 아름다움보다 더욱 우아하고 강인한 매력을 뿜어낸다. 또 그의 작품에는 시원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흐르며, 원형이 주는 부드러움과 원만함도 가지고 있다. 소리와 조명, 조형물과 공간이 주는 연대감도 신비롭고. 하찮게 여기는 것들이 어우러진 하모니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