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이샛별 화가 - 위장과 변신, 중독 그 다음은

이동권 2022. 9. 12. 23:44

이샛별 화가 ⓒ정택용

 

계급장과 폭탄이 난무하는 그림을 선보인 이샛별 화가를 만났다. 그래서 화가 이샛별 화가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웃고 있지만, 슬퍼 보이는 그림들이라고. 또 화려하지만, 창백한 느낌이 흐르고 있다고. 

"위장입니다. 환경에 맞춰 변신하고, 거기에 맞춰 살아가는 인간들의 자화상이죠. 권력의 횡포에 의해 몸뚱이만 있고 손과 발이 없는 작은 개인들에서 권력의 힘에 중독되어 아무런 의식 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 구체화되어가는 중입니다."

화가 이샛별은 어린 시절, 최전방(휴전선 가까이에 있는) 강원도 한 마을에서 살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군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습니다. 군인들에게 계급장이나 군목걸이 등 군인들의 물품을 만들어 주었지요. 그래서 집안에는 군과 관련된 물건들이 많이 있었고, 어린 나이부터 낯설지 않게 군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또 제가 살던 동네에서 한미팀스피리트 훈련이 벌어지곤 했는데, 그때 통째로 동원돼 박수 치러 가기도 했었고, 예술을 배운다는 것도 반공포스터와 반공글짓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반공이데올로기는 정점을 향해가고 있었다. 분단 이후 탄생한 정권은 정당한 민중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반공'은 정권 연장, 혹은 군사독재 정권을 합리화시키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명목으로 '이적 행위'라는 족쇄를 채워 철저하게 민중세력을 탄압하고 압살했다.

이후 이샛별은 중학생이 되어 서울로 전학한다. 그러나 그의 서울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처음 서울에 와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풍성한 자연 속에서 뛰놀다가 서울에 오니 울적했지요. 순진한 마음에 노력하면 모두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그림을 배우면서 점점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는 그림이 서울 생활의 힘겨움을 이겨내는 마음의 위로가 된 듯했다. 그리고 미술대학에 입학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게 됐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을 읽고 몹시 놀랐다는 것. 권력에 의해 짓밟히고 싸우다 쓰러져간 민중의 아픔들을 뼈저리게 실감한 그는 노래패에서 잠시 활동하다, 지금은 그림이라는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제 그림을 싫어하거나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치적이라는 이유죠.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정치적인데...그런 시선으로 제 그림을 재단하지 말았으면 해요. 여러 가지 상상, 생각, 의식을 가지고 제 그림을 봐줬으면 좋겠어요."

화가 이샛별의 그림은 추억 속에 있다. 계급장과 화사한 꽃, 그리고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람들. 하지만 이들은 하나 같이 창백한 모습이다. 뭔가를 강렬하게 염원하는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평화였다. 평화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요동을 듣게 하고, 한결 가까이 다가가 서로 마음을 나누자고 호소했다. 사랑과 이해로 일상을 정화시키고, 날카롭게 자신을 다져나가는 삶, 그 고귀한 생성의 힘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가자고 말했다.

평화, 그것은 아름답고 신성하다. 하지만 철저한 성찰과 투쟁을 요한다. 그러면 사랑스러운 음악과 같이, 어느 따뜻한 이의 기도와 같이, 멍든 마음을 구제하고 안식을 선사한다. 이는 일종의 자신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며, 행복으로의 첫 발이다. 또 자신보다는 오직 사랑과 정의만을 위해 생각한다. 이 얼마나 단순하고 솔직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