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면 고지식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처럼 깊이 있게 사람들을 만나기 힘든 세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필하기 위해서는 외면적인 아름다움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 또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력보다는 겉치레와 간판을 중요시하며,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명품 패션으로 무장하고 상대적인 우월감을 확인하며 행복을 찾는다.
민희영 작가는 자본주의의 병폐와 고름들을 과감하게 터뜨린다. 일반 노동자의 세 달치 월급으로도 살 수 없는 명품 핸드백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동경하는 이들에게 '진짜 명품이 무엇인지', 또한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날카로운 물음을 던진다. (현재 그녀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을 내는 등 짬짬이 작업을 하고 있다.)
민 작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을 이용해 명품들을 작품 속에 재현했다. 흘깃 보면 전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면 오브제로 사용한 재료는 '황당' 그 자체다. 병뚜껑, 과자, 오징어, 육포 등으로 만든 '진짜 짝퉁 명품'이다.
"잡지 속에 진열된 물건도 명품이지만, 자신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도 명품입니다. 어느 여자나 한 번쯤은 명품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지만 거기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주위에 있는 물건들이 어느 순간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병뚜껑 조차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잡지에서 명품을 소개하는 광고를 봤는데, 어느 순간 제가 모아 왔던 물건들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재료로 명품들을 재현해 봤습니다.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만든 것들이 명품 로고와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명품에 대한 의미가 새롭게 탄생한 것이죠.
그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이 고급스러운 연출과 브랜드 이미지에 힘입어 명품이 됐다. 짝퉁 같지도 않은 이색적이고 독특한 예술품이 명품으로 창조된 것이다. 비싼 가격 때문에 명품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이 짝퉁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는 모습과 떠올랐다. 이렇게까지 해서 명품 브랜드를 꼭 소유해야 하는지 말이다.
민영희 작가가 짝퉁 명품 작품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은 '먼지'로 만든 구찌 가방이다. 필요 없는 소재를 가지고 멋진 명품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특히 육포로 만든 명품 가방은 맥주 생각이 저절로 난다. 실제 그녀는 "작품을 만들면서 육포를 먹기도 했다"고 하니, 소재 선택의 실험성은 '엽기'에 가깝다.
"제 작품은 명품을 패러디하거나 이미테이션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고 싶었고, 명품에 대해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미술을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대중적인 소재나 주제를 이용해 관람객들과 함께 느끼고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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