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에 가면 인형옷을 입고 손을 흔드는 '인간 인형'이 있다. 푹푹 찌는 여름에도 변함이 없다. 땅바닥에 달걀을 깨 놓으면 프라이가 될 정도로 뜨겁지만 어린이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인형옷을 입고 뙤약볕에 서있는 인간 인형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또 짓궂은 아이들이 태권도 시범을 보이듯 이들을 향해 날아차기와 정권지르기를 날려댈 때면 언짢고 딱한 마음에 연민이 일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 인형들은 놀이공원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사진모델을 자처한다. 무서워하거나 수줍어하는 아이들에게는 먼저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고 부모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손짓한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서울랜드를 찾아 원숭이 선장으로 분한 김은아 씨를 만났다. 마치 담요를 둘러쓰고 다니는 것처럼 덥고 둔해 보였다.
김 씨는 동물캐릭터 모양의 옷을 입고 관람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손이나 흔들고 사진 모델이나 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놀이공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 그녀는 놀이공원을 찾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더 나아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팅커벨'이 된다.
놀이공원을 한바퀴 돌고 나면 땀에 절어 녹초가 되어 있는 인간 인형. 속사정을 알고 보면 애처로운 직업이다. 놀이공원에 직접 고용돼 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거의 이벤트 회사를 통해서 파견되거나,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로 일한다.
"많이 덥죠?"
"지금 인형옷 안 상태가 어때요?"
"땀이 나고 푹푹 찌죠?"
아무리 물어도 묵묵부답인 김은아 씨. 그녀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양손으로 부채질을 한다. 그러다 갑자기 몰려온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엉겨 붙는다. 어떤 아이들은 사정없이 그녀의 배를 때린다.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쳐도 막무가내다. 팔을 잡고 사정하고, 어르고, 구슬려도 아이들은 발로 그녀의 엉덩이를 걷어찬다. 더워서 속이 타고, 아파서 신음하면서도 할 수 없이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잡는다.
한여름 날, 털옷을 입고 토끼, 당나귀, 꿀벌 등 탈을 쓴 인간 인형들의 고통을 상상만해도 마음이 짠하다.
"학생이에요?"
고개를 가로젓는다. 직원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끄덕인다.
"힘든데, 보람은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든다.
"이름이 뭐에요"
털옷 때문에 볼펜 쥐기도 힘든 손으로 삐뚤삐뚤 글을 쓴다. 김은아.
그리고... 등등...
자세한 속사정은 다른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인간 인형에게 들을 수 있었다.
"쌀쌀해지면 따뜻하고 좋아요. 하지만 한 바퀴 돌고 나면 겨울에도 땀이 나요. 그래도 바람 들어오는 곳이 있어서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시원해요. 하지만 여름엔 땀으로 목욕을 합니다. 그래서 땀이 적고 더위를 덜 타는 여자분들이 많이 해요. 참고로 저는 찜질방에 안 가요"
대규모 놀이공원에서는 오디션을 통과한 공연부 단원들이 인형탈을 쓴다. 아르바이트는 거의 없다. 하지만 작은 규모의 놀이공원이나 길거리 행진, 백화점 앞에서 행진하는 인형 인간들은 이벤트 회사에서 고용된 비정규직들이다. 요즘은 이벤트 회사를 통해 아르바이트를 쓰는 게 추세라고 한다.
개그맨 김진수의 과거 직업은 놀이동산에서 인형옷을 입고 공연하는 단원이었다. 텔런트 심은하도 놀이공원에서 퍼레이드를 했던 고적단원. 놀이공원 단원들은 사람들을 즐겁고 재밌게 해주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악동들을 만나면 대련도 해야 하고, 때론 몰매를 맞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웃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천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놀이공원에서 일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될까?
보통 인력공고가 나면 이력서를 들고 놀이공원 관리담당 사무실이나 이벤트 회사를 찾아가면 된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자격 요건은 까다롭지 않다. 키자 작아도 그에 맞는 캐릭터 인형들이 많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하지 않는 게 낫다. 또 더위를 잘 타는 사람에게는 매우 피곤한 일이다.
"인형옷은 겨울에 입어도 무척 더워요. 그래도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보람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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