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군에서 한우를 사육하고 있는 김성기 씨를 만났다. 그는 소 사육장을 둘러보게 하면서 소 사육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갓 태어난 송아지가 흐릿한 눈빛으로 어미젖을 문다. 당장이라도 젖을 물리지 않으면 울음을 터뜨리려는 어린아이처럼 애처롭다. 새로운 생명체를 잉태하고 키우는 것은 위대한 모성. 온통 주름살이 가득한 어미 젖통에서 허연 젖이 뚝뚝 떨어진다. 송아지는 젖을 물다 말고 노곤한 미소를 지으며 평화롭게 어미 옆에 누워 잠을 청한다. 이 순간, 먼 훗날 늠름한 황소가 된 송아지를 떠올리는 것은 어린아이 같은 감상일 뿐. 이 송아지는 하루가 흐르고, 한 달이 흐르고, 끊임없이 자라나 언젠가는 우리의 식탁에 오를 것이다.
소가 새끼를 낳으면 태는 거두어 버린다. 병균이 많기 때문이다. 태를 치우지 않으면 어미 소가 본능적으로 먹는데, 이것이 농가에서 자라는 소에게만 발병하는 ‘브루셀라’ 전염병의 원인이 된다.
송아지를 낳는 암소를 ‘번식우’라고 한다. 번식우는 사람이 직접 수정시켜야 하기 때문에 배란기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암소가 발정(배란)을 하면 많이 운다. 그리고 ‘승가’ 자세를 받아들일 자세를 취한다. 승가는 수소가 앞발을 들어 암소의 등에 타는 것을 말한다. 또 암소의 발정은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암소의 외음부가 선홍색을 띠며 붓기 때문. 암소의 배란일은 20~21일 간격이며, 수태 기간은 280여 일이다.
"초산이 아닌 경우에는 소가 알아서 잘 키웁니다. 별로 신경 쓸 게 없지요. 간혹 처음 새끼를 낳는 암소는 젖을 먹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젖꼭지가 아프기 때문에 새끼가 다가오면 도망가죠. 이런 경우에는 어미를 묶고 억지로 젖을 먹입니다."
2개월이 넘은 송아지는 제법 날쌔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것만 같았던 연한 살갗도 얼음이 한 겹 낀 것처럼 단단해진다. 호기심도 늘어 주인에게 주둥이도 들이대고, 어미가 먹는 사료 맛도 차츰 알아간다. 한눈에 봐도 건장한 황소의 자식이다. 하지만 송아지는 아비를 모른다. 비육소는 냉동 보관된 ‘종자소’의 정액으로 수정되기 때문이다. 비육소는 수천, 수만 마리가 태어나지만 뜨거운 교미 한 번 없이 잉태된다. 죽음을 내려다보는 슬픔만큼이나 영락없이 처량하다.
태어난 지 3개월이 지나면 송아지의 모습이 점점 사라진다. 잔잔하고 기품 있는 황소의 발걸음을 익히기 시작한다. 하지만 속뜻을 가늠하기 힘든 앳된 모습은 그대로다. 이때는 비육소의 살코기 맛을 높이기 위해 송아지의 불알을 제거한다. 인간에게 성(性)은 가장 내밀하면서도 달콤한 마술이 녹아 있는 곳이다. 또한 모든 생성을 담당한다. 그래서 그 기능을 잃거나 손상을 입으면 삶의 의미를 잃기도 한다. 하지만 수컷 송아지에게는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소비자들의 혀는 거세한 소의 연한 살코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수컷 소를 거세하는 방법에는 ‘유혈’ 과 ‘무혈’ 두 가지가 있다. 유혈은 수의사들이 칼로 고환을 끄집어내는 방법이고, 무혈은 쭉 늘어진 고환 윗부분의 살을 고리로 꽉 조여 놓고 자동으로 떨어지게 하는 방법이다. 고리를 끼우면 송아지는 연약한 살이 죄는 아픔으로 한동안 발길질을 한다. 시술 방법이 간편해 대부분의 농가에서 무혈 방법을 사용한다.
"거세를 하면 성장은 다소 늦지만 육질이 좋아지고 값도 제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거세하지 않은 소를 키우면 고기 등급이 낮아 요즘 농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송아지는 점점 자라 황소가 된다. 열렬한 사랑의 감정도, 맘껏 뛰어다니는 자유도, 사료와 지푸라기 이외에는 다른 먹이 하나 먹어보지 못하고 우리에 갇혀 20개월을 산 뒤 수탁업자들에게 팔려 트럭에 실린다.
황소는 트럭에 실리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호기심 많은 소는 별다른 요동 없이 트럭에 올라가지만, 대부분 백납처럼 차가운 울음소리를 내면서 강제로 트럭에 실린다. 이 순간 농부의 얼굴은 만선의 기쁨을 누리는 어부처럼 밝다. 땀과 노동에 대한 결실이기 때문이리라. 도축장으로 실려 가는 소는 이때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의심의 눈초리로 마지막 운명을 기다릴 뿐이다.
소들이 쇠고기가 되면 등급을 매기고 경매를 시작한다. 경매장 정면에는 도축 무게와 등급 등이 표시된 전광판이 있고, 중개업자들은 전광판을 바라보면서 손바닥만 한 숫자판에 가격을 적어 넣는다. 적정 가격이 책정되면 중개업자에게 쇠고기를 인계한다. 경매가 끝나면 도매업자는 농부의 통장에 돈을 입금하고 거래를 마무리한다.
유화청 마장동 정육 소매상 - 한우, 너무 비싸서 못 먹는다
경기가 좋지 않아 소매상들의 얼굴은 울상이다. 1986년 구로연대파업을 끝내고 정육 소매상을 시작한 유화청 씨도 마찬가지. 게다가 인터넷을 통해 갖가지 정보가 넘쳐나면서 "고기를 사러 온 사람들에게 함부로 아는 체도 못한다"고 말했다.
"정직하게 고기를 팔지 않으면 망하기 십상입니다. 장사를 잘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뿐입니다. 한우라고 해서 모두 좋은 고기라는 편견을 가지지는 마세요. 고기의 질은 등급으로 결정됩니다. 그래도 거세한 소가 수컷다움을 잃어서 그런지 육질이 부드럽고 선호도도 높습니다."
그는 한우가 너무 "비싸다"고 지적했다. 한우는 우리의 고유한 고기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사람들만 먹는 음식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한우는 특수층이나 먹을 수 있습니다. 서민층은 어쩔 수 없이 수입육이나 돼지고기를 즐겨 먹습니다. 한우는 비싸서 서민들이 엄두도 못 내는 귀족 음식입니다."
실제 소비자들은 한우보다 호주산이나 미국산 쇠고기를 많이 찾는다. 비싼 한우는 부담스럽고, 진짜 한우인지도 의심스러워 차라리 수입육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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