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성 화가 - 귀환의 착각, 돌아오지 못한 평화

2022. 9. 6. 15:22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정화성 화가

 

"월남에 파병됐던 장병들과 자이툰 부대 장병들의 청춘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일제강점기의 식민지배와 신자유주의가 무엇이 다르며, 독립운동과 농민들의 생존투쟁이 얼마나 차이가 있겠습니까?"

 

정화성 화가는 '세상의 모든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불린다. 세상에 대한 의문과 질문이 늘 그의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다른 해답은 없어 보인다.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을 냉철하게 관조하면서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듯 순수하고 고집스럽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정 화가는 아무리 가난하고 배가 고파도 그림을 잘 팔지 않는 화가로 유명하다. 대학 강사료도 한 강좌당 30~50만 원 정도밖에 안 되지만 돈이나 사소한 체면 등을 얻는 행동에 그다지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자본에 휘둘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에게는 '희망'이 있다. '희망'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것을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고집스럽게 붓을 들 수 있는 이유도 자본에 의해 몰딩되고 파편화되는 일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자본과 권력의 메카니즘에서 소외당하거나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멀티미디어화되면서 정지된 이미지(그림)가 할 수 있는 일은 사회의 문제와 갈등을 끄집어내고 의제화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정화성 화가는 그림을 예쁘게 그리지 못한다. 우울했던 가족사와 개인적 체험 때문이다. 그의 가족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옮길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와 한국전쟁에서 사선을 넘나들어야 했던 가족들의 이야기는 무척 가슴 아프게 했다.

정 화가는 언론을 끊은 지 오래됐다. 언론들이 자신들의 관점으로 진실을 포장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눈으로 주위의 현상을 관찰하게 됐고, 결국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세상에 대한 회의를 뼈저리게 했다. 그가 요즘 들어 풀이 죽어 있는 이유도 그러했다.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세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느껴야 하는 '한계' 혹은 '무기력함'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언론사 문화담당 기자에 대한 핀잔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진다.

"미술을 하는 저널리스트가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면서 글을 쓰는지 의문이에요. 그런 기자들이 이 시대를 얘기할 수 있겠어요. 진실을 얘기할 수도 없고, 마음의 중심을 가지고 글을 쓸 수도 없고."

그는 외국 문화가 무분별하게 침투하는 것에도 우려를 표했다. 일정 부분 기자들의 잘못이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의 자본이 들어와서 문화마저도 파탄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토와 문화를 탄탄하게 유지하면서 서로의 문화를 교류해야 하는데, 한미 FTA 등 요즘 같은 상황을 보면 회의적입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몰려있다고 봅니다."

정화성 화가의 작품은 노동력이 많이 들어간다. 캔버스에 촘촘한 점을 찍어 음영과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흡인력이 있다. 자신의 말에 귀담아 들어주기를 원하는 한 맺힌 이들의 목소리처럼 강렬하고 간절하다. 어떤 면에서는 그 정도가 깊어 구슬프다는 인상도 준다. 그가 공들인 시간만큼,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목소리만큼 강도는 더욱 세진다.

그는 주위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모티브로 이용해 작업을 한다. 그의 작품 'Dejavu - 협공의 동산'도 낚시터에서 만난 낚시꾼을 형상화해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로 구성한 작품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참여하는 것은 매우 아름답고 훌륭한 일이다. 대립의 지점에서 서로를 바라보더라도 그 길이 옳은 일이라면 진심의 원천까지 폄하할 수는 없다. 어쩌면 자신의 존재를 생성하고 지탱하는 '원천'의 문제는 동일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정화성 화가가 이 시대의 구경꾼, 방관자에서 머무르지 않고, 또 자신만을 위해서 살지 않고 고민하는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어 마음이 뜨겁다. 몸과 마음이 지치더라도 정말로 인생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길, 바로 정화성 화가처럼 열성을 가지고 오늘을 임하는 자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