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기 화가를 만났다. 그가 사회 속에서 억압받고 있는 남성성을 들춰내 남성들에게 기운을 주겠다며 '마초'를 소재로 전시회를 열 때였다.
"사회적으로 볼 때 '남자'가 '마초'라기보다는 권력을 가진 자, 돈 많고 빽 있는 사람이 진정한 마초입니다. 자신처럼 가진 것도 없고 몸까지 부실한 남자들은 마초와 거리가 멉니다."
그의 얘기는 남자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마초'로 분류되거나, 남자이기 때문에 참고 감수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에 반기를 든 것이었다. 돈도, 빽도, 권력도 없는 남자는 사회에서 '나부랭이' 정도로 취급받고 있는데 왜 '마초'라는 잣대를 들이대느냐는 것이겠다.
조문기 화가의 작품은 솔직하고 풍자적이며 유쾌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슬프고도 우울한 남성들의 자화상이 숨겨져 있다.
"현대사회가 상업화될수록 남성성 자체를 억압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남성성이 사회적인 틀에서 억압되다 보니, 남성들이 기형적이고 변태적인 모습으로 비치곤 하거든요."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무척 달갑지 않은 소리였다. 수많은 억압과 차별을 받으며 자라야 했던 여성들이 볼 때 '비난'의 소지도 다분하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 사회가 여성의 인권을 강조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로 살고 있는 남성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발소를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이발소라는 공간 자체가 남성적이어서 그런지 퇴폐적인 이미지와 겹쳐왔습니다. 그런 연유는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억압받고 위축된 모습으로 남성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문기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슴에 털이 나고 수염을 기르고 있는 남성이다. 또 반듯한 가르마에 알맞게 배가 나와있는 중년 남자들이며 외색이 짙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는 목욕탕, 이발소 등 남성성이 드러나는 곳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정말 '마초'스럽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마초는 에스파냐 말로 '남자'를 뜻한다. 그리고 이 단어에는 우월하고 정력이 넘치는 남자라는 수식어가 포함되어 있다.
그의 그림을 쉽게 넘겨보면 매우 우스꽝스럽고 권위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서늘하고 잔혹한 사회상이 숨겨져 있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틀 안에서 억눌리고 거세당하며 살고 있는 남성이다.
조문기 화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마초'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사회 규범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로 묘사돼 있다. 또 억압된 남성성을 통해 남자로 태어나서 남자가 겪어야 하는 삶의 무게들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았다.
조문기 화가는 라틴을 동경한다. 라틴지역의 음악과 정열을 사랑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그는 라틴밴드 '불나방스타소쎄지클럽'에서 노래와 기타를 맞고 있는 가수이기도 하다. 그는 "라틴음악과 자신의 작품이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면서 "본업은 화가이지만 취미 이상으로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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