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생각나무

영어에 미쳐가는 사회

이동권 2022. 9. 4. 17:06

신문에서 모 연예인의 남자친구를 공개한다는 기사를 봤다. 제목은 '잘생긴 미남에 영어능통'. TV연예뉴스에 출연한 MC들도 똑같이 얘기한다. 기자들도, 독자들도, 시청자들도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다른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인물을 소개할 때 '영어가 유창하다'는 표현을 자주 쓰고, 예술계에서도 미국 유학을 다녀온 이들이 주류 파벌을 이루고 있어 영어를 못하면 명성을 얻기도 힘든 형편이다. 또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좋은 직장에 들어갈 기회조차 없다. 영어는 이제 기본이 돼버렸다.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국방부 고위층에서도 영어를 잘하는 장군은 능력 있고, 영어를 못하는 장군은 무능력하다는 이분법이 공공연하게 존재한다.

영어를 잘하면 풍요로운 미래가 보장된다고 여기는 학부모들도 '영어지상주의'에 편승해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에게까지 영어교육을 시킨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한 달에 1백만 원이 넘는 수강료를 내며, 이마저도 만족스럽지 않으면 조기유학을 보낸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도 자신의 아이가 또래 아이들에게 뒤처지는 게 불안해 영어학원에 보낸다. 아이들도 학원에 가야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먼저 보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맘껏 뛰놀면서 예절과 사랑을 배워야 할 나이에 경쟁과 불필요한 학습의 고통으로 내몰리고 있다.

많은 국비, 자비 유학생의 대부분이 미국식 세계관이 형성된 교육환경에서 학위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와 한국 사회를 친미 성향으로 재생산하고 있다. 미국식 사고를 따르는 영국, 일본 유학생까지 합치면 한국 유학생의 90% 이상이다. 이들은 미국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는 세계관으로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형성하며 한국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잘 살고 힘 있는 나라, '미국'의 언어를 배워야 미래가 보장된다고 믿는 대미 종속적인 사고가 뿌리 깊게 형성되고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청원의 꿈을 펼치기 위해 세계로 뻗어가는 우리의 아들딸들은 자랑스럽다. 국제화 시대에서 영어를 잘하면 그만큼 국익에 도움이 되니 말릴 일도 아니고 더 나은 모습을 위해 열심히 공부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뿌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 고국으로 돌아와 일신의 안위와 영화를 위해 벌이는 친미 잔치는 정말 치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