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던 예비군 동원훈련이 2년 6개월 만에 재개된다. 훈련 기간은 2022년 6월 20일부터 12월 15일까지다. 동원훈련은 유사시에 전시 임무를 수행하도록 평시에 2박 3일 동안 예비군을 소집해 펼치는 훈련이다.
예비군 훈련이 재개된다고 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훈련 때 지급하는 훈련비가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교육 내용이 어떻게 구성됐을지 걱정됐다.
예비군 훈련의 시작은 복장 검사다. 본인이 맞는지 신분증을 확인하고 전투복, 전투화 등을 제대로 갖췄는지 살핀 뒤 입장을 허용한다. 잠시 훈련장에 앉아 시간을 때우고 있으면 총을 나눠준다. 그리고 교육일정에 맞춰 어떤 조는 총을 쏘고, 어떤 조는 화생방 실습을 하고, 어떤 조는 안보교육 등을 받는다. 교육은 조별로 돌아가면서 실시된다. 교육이 끝나면 총을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바로 '향방작계'라고 불리는 예비군 훈련이다. 이 향방작계 훈련을 출퇴근 없이 2박 3일 동안 계속하면 '동원훈련'이 된다. 더도 덜도 없다.
예비군 훈련은 정말 무료하다. 가장 재밌다는 사격마저도 자기 순번이 돌아오기 전까지 오징어 땅콩이 필요할 정도로 지루하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전투복만 입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이 돼버리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참기 곤혹스러운 훈련은 '정신교육'이다. 파워포인트로 만든 문서를 프로젝트로 보여주면서 케케묵은 '반공사상'을 주입한다. 이 문서는 북의 화력과 군사체계, 적화야욕 음모, 무장간첩의 활약 등의 내용과 함께 북한 인권과 경제상태 등을 곁들인 반북 교육이 주요 내용이다.
자료를 만든 날짜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7년 전이나 별 차이가 없다. 군부독재가 물러나고 민간인이 대통령이 돼도 군을 움직이는 머리들이 바뀌지 않았으니 그럴 테다. 이런 교육을 한 시간 정도 받고 나면 개혁이고, 민주주의고 하는 말들은 다 소용없는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자료 교육이 끝나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교관이 지휘봉을 흔들고 나와 '북한이 호시탐탐 이 땅을 노리고 있다'고 겁을 주면서 예비군 훈련이 왜 필요한지 강조한다. 동대장이건, 중대장이건,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의 말은 대부분 비슷하다. 우리 군의 주적은 '북한'이라고, 마치 무장한 북한 군인들이 당장이라도 총을 들고 내려올 것처럼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북한이 적이 아니면 자신의 정체성마저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처럼 강박증을 보인다. 정권이 바뀌면 미묘한 흐름이 감지되기도 한다. 주적이라는 표현이 없어졌다가 다시 등장하는 식이다.
어떤 이들은 반미시위하는 젊은이들은 '바보'라느니, 북한은 아직도 남침을 하기 위해 총구를 들이대고 있다느니, 전시에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미국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느니, 미군이 한국에 있어야만 전쟁억지력이 있다느니 등등의 말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서해교전, 땅굴침투, 잠수함, KAL기 공중폭파 등등을 해묵은 사건을 예로 들며 '북한은 여전히 적화통일을 원하고 있다'고 주창한다.
삼팔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상황이라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 정도 얘기까지 나오면 미간이 자연스레 찌푸려지고 복창이 터진다. 언제까지 우리 민족을 주적으로 여기면서 총부리를 들이대야 하는지 도저히 화가 나서 들어줄 수가 없다. 이들에게는 한반도 평화에는 별로 관심 없는 듯하다. 이 땅에 불안감이 조성돼야 자신들의 밥그릇도 온전할 테니까.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게임을 한다. 교육 중에는 핸드폰을 꺼달라고 부탁하지만, 여기저기에서 32화음 핸드폰 벨소리는 울려댄다. 섹시하게. 그리고 아무리 많이 자도 졸린 게 예비군 훈련이다. 예비군들은 전투복을 턱까지 덮어쓰고 깊은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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