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이 분당하기 전 지방선거에 출마한 박춘호 대전시당 위원장을 만났다.
박춘호 위원장은 택시노동자로 출발해 민주노총 1기 대전지역본부 본부장과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1,2기 대전지역본부 본부장,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대전지역 공동대책위 상임 대표 등 수많은 타이틀이 따라다니는 운동가다.
박 위원장은 1998년도에 해고된 이후, '출입금지가처분' 때문에 10년 가까이 근무한 사업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도둑질을 하거나 위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택시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일한 것뿐인데, 정든 사업장에 들어갈 수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박춘호 위원장이 '운동'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힘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두 가지 사연이 있다.
첫 번째는 막내 동생 때문이다.
"연세대에 다니던 막내 동생이 운동권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많은 사실을 알게 됐죠. 동생이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대전에 내려왔습니다. 짐이라고는 책밖에 없었는데, 동생과 대화가 잘 안 되니까 몰래 동생의 책을 읽게 됐죠. 그러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책을 소지하고만 있어도 감옥에 잡혀 들어갈 책들이었거든요. 그렇게 몰래 동생이 읽던 책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세상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두 번째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노동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89년도에 택시회사에 다녔는데, 그 당시 30대 후반의 기사들의 생활환경이 열악했습니다. 학력도 짧았지요. 대개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버스회사 조수로 일하다 운전면허를 따서 택시 운전을 시작한 사람들이었거든요. 이들은 인생의 목표가 개인택시 받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하더라도 회사가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았고요."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박 위원장은 노동 형제들의 고통이 자신이 당한 것처럼 억울하고 분해 본격적으로 '노동법해설집'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석탑에서 출판된 책을 빨간 볼펜, 파란 볼펜으로 줄을 쳐가며 10번 이상 봤다. 하지만 그는 "노동청에 진정서를 내고 고발장을 가져가도 공평하게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그때부터 "이 문제는 노동자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함께 뭉쳐 조합을 만들고 투쟁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고 싸우게 됐다"고 말했다.
박춘호 위원장은 "조카들이 '데모 말린 삼촌이 한 술 더 떠 데모하고 다닌다'고 말했다"면서 허허 웃어버렸다. 그는 지금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 가슴이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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