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들이 한창 사측과 싸우고 있을 때였다. 세종문화회관 서울시 합창단에서 테너를 맡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노동조합 한상희 부지부장을 만났다. 그는 굵고 강단 있는 목소리를 가졌다. 그의 음성을 들은 사람이라면 명함을 미리 받지 않아도 그가 '성악가'임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고 힘차다.
언젠가 민주노총 총파업 때 세종문화회관 조합원들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한강 둔치를 스쳐 지나가는 찬 바람마저 꺾어버릴 정도로 열정적인 무대를 선사했던 이들의 공연을 바라보면서 입이 떡 벌어졌던 기억이 있다.
세종문화회관에 코오롱 부회장 출신 기업인이 새 사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그동안 격렬한 마찰을 빚어왔던 노사 간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결해보겠다', '대화로 풀어보자'고 했다. 노조는 대화를 원하는 사측의 입장을 받아들여 150일 동안 진행하던 천막농성을 끝냈다. 노조는 또 곳곳에 붙여놓았던 플래카드나 선전물까지도 다 뗐다.
협상은 순조롭지 않았다. 새로 부임한 사장은 외부에서 노무사를 영입해 실무협의를 진행하게 했고, 서울시에서 파견된 공무원 2명이 상당 부분 협상에 입김을 불어넣으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아무것도 변한 것 없이 지금까지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의 문제는 어디서 왔을까? 상식이 무너진 인사경영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찾을 수 있다.
한상희 테너는 수익창출을 근거로 일반기업의 예술행정 비전문가를 서울시에서 선임한 것은 무리한 인사라고 봤다. 경영본부장, 공연본부장 등 주요 경영진도 모두 예술과 무관한 사람, 비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전문적으로 전공한 직원, 단원들은 비전문가로 세종문화회관에 채용된 경영진을 신뢰하기 힘들었다.
세종문화회관 노동조합은 전국의 모든 예술인 노조에서 주목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가 박살 나면 다 깨진다는 것. 실제로 지방 예술단체에서는 벌써 1~2년 계약직으로 전환한 곳도 있다. 아니 원래 예술인들은 비정규직이었다. 이 부분에서 세종문화회관 예술인들이 왜 비정규직인지 짚어봐야 한다. 예술인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는 그들이 왜 비정규직인지 가닥이 잡을 수 없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일하는 예술인들은 오디션을 본다. 예술인들은 오디션의 당락이 해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안전장치인 '상시평가제도'를 요구했다. '상시평가제도'는 연습 도중에 문제점이 발견되면 바로 해고하지 않고 주의와 경고를 거쳐 개별 오디션을 보게 하는 제도다. 그러나 사측은 '일시평가제도'를 주장했다. 일시평가제도는 1년에 한 번 오디션을 봐서 점수가 낙오되면 바로 해고시키는 제도다.
"세종문화회관의 고용은 정규직이지만 비정규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오디션 때문입니다. 사측이나 주류 언론들은 '예술가들이 오디션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철밥통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예술인들이 놀고먹으려고 한다'고 떠들면서 예술인들을 집단이기주의자로 만들었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 데도요. 오디션은 고용의 한 형태로 봐도 좋습니다. 사측이 단원들을 비정규직화하거나 해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까요. 단협에서 회사가 제시하는 3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임금을 '연봉제'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능력이 있는 만큼 차별화해서 나눠주겠다는 것인데, 사실은 정규직을 비정규직 계약제로 전환하겠다는 말이겠죠. 둘째는 '단체협약'입니다. 노조의 입장을 고려해 자신들이 알아서 잘 운영하겠다는데, 믿을 수 없죠. 마지막은 '평가'입니다. 사측에서는 예술인들을 공평하게 평가하겠다고 합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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