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전 부인과 딸을 매일 같이 찾아가 협박과 폭행을 일삼았던 한 남자가 결국 전 부인을 칼로 다섯 차례나 찔러 혼수상태에 빠지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극단적인 가정폭력의 결말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이 비극의 단초는 우리 사회가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극심한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그들에게 사회는 '지극히 사사로운 일' 또는 '부부간의 일'정도로 치부하며 안일하게 대처했고, 해결책마저도 가족 구성원들의 힘에 맡겨 버렸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폭력으로 인한 참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여성의전화의 통계에 따르면 전체 여성 살인범의 약 51%가 남편의 심한 학대와 오랜 기간의 폭력에 의한 남편 살해라는 것. 그럼에도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남의 가정사'로 인식하고 있어 적극적인 해결책 마련은 미흡한 실정이다.
서울여성의전화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여성인권영화제를 열어 가정폭력이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얼마나 잔인한 방법으로 자행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지를 캐묻기로 했다. 이제까지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꺼내 가정폭력을 추방하자는 것이다.
열정적이고 화통한 성격의 유리화영 서울여성의전화 사무국장. 그는 나와 만난 지 얼마지 않아 남자들도 혀를 내두를만한 벽타기의 진수를 선보였다. 플래카드를 적당하게 걸 곳이 없자 벽을 타고 올라가 줄로 당겨 묶은 것.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3미터 높이의 벽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여장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여성의전화가 생긴 지 23년이 됐지만, 사람만 바뀔 뿐 피를 부르고, 살인을 부르는 가정폭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똑같은 유형의 사건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지만 사회의 관심은 차갑기만 합니다. 용산에서 초등학생을 성추행하고 살해 유기했던 사건은 언론에도 많이 알려지고, 어린이 성폭력 예방에도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유난히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폭력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고민이 많았죠.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이디어를 짜낸 끝에 영화제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문화매체인 '영화'가 제격이거든요."
그는 이러한 시도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의 문제를 사회적인 의제로 설정하는 것은 자신의 자중감을 살리는 일이고, 이를 객관화시켜 가정폭력을 근절해나가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여성인권영화제를 전국적인 문화행사로 키워 가정폭력의 문제를 여론화시키겠습니다."
여성인권영화제는 2006년 시작해 15년을 달려왔다. 2022년에는 영화제와 출품공모전을 개최하지 않고 1년 정비의 시간을 갖는다. 다만 지역 여성인권영화제 교육과 여성주의 번역가 교육은 진행한다. 여성인권영화제는 2023년에 만나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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