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류은규 청학동이야기 사진작가 - 기억하게 만드는 기록

이동권 2022. 9. 1. 22:58

류은규 작가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류은규 작가는 1982년 지리산 청학동을 처음 찾은 이후 40여 년간 청학동 사람들과 그들의 삶, 자연과 풍경 등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시간의 무게와 기록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내가 그를 만난 건 2006년 포스코미술관에서였다. 전시 첫날이라 무척 분주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2014년 제1회 수림사진문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사진영상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청학동은 지리산 깊은 산속, 해발 850미터에 위치한다. 전통을 지키고 세속의 문명을 거부하는 '유불선합일갱정유도' 신도들이 마을을 세웠고, 이들이 1970년대 하동군에 마을 이름을 '청학동'으로 제출해 정식 이름이 됐다.

류은규 작가가 1982년 여름 처음으로 청학동에 갔다.

지리산국립공원 안에 마을이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사진학과 동료들과 함께 청학동을 찾았다. 그때부터 류 작가는 청학동 사람들한테 끌려 가는듯한 매력에 빠져 혼자 청학동을 찾았다.

"하동 마을에서 산 쌀가마니를 메고 청학동까지 산길을 올라갔어요.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지요. 당시에는 민박집도 없었고, 어느 집에서 자더라도 돈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사진스튜디오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을 때도 저는 일 년에 몇 번씩 이 마을을 찾았어요."

그는 사진을 찍는 것뿐만 아니라 세속의 잡다한 일에 위로받고 싶어서 청학동을 찾기도 했다.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청년들과 밤새워 이야기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으며, 때로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일하러 나가면 방 안에서 혼자 누워 졸기도 했다는 것. 그런데도 그는 "청학동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는 작업만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인분들은 제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우리는 원숭이가 아니야. 사진 찍지 마'라고 지팡이를 들고 쫓아오기도 했거든요. 특히 이 마을 여자들은 사진 촬영을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몇 번씩 그 집을 찾아가 아들 친구로 대접받기 시작하면서 겨우 사진을 찍을 수 었었죠."

청학동 사람들은 도시인들의 흥밋거리로 여겨지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TV광고에 청학동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부쩍 늘어났고, 옛 전통을 지키고 자급자족 생활을 했던 청학동의 풍습은 자본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청학동 사람들은 도시인들의 요구로 식당, 민박, 선물가게를 경영했고, 마을 사람들도 관광객이나 사진가들의 카메라 셔터를 허락했다. 생계를 위해서는 현금수입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하지 못했다.

"변하고자 하는 것들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변해가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그러나 청학동에는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생활양식은 변해도 그들에게는 변하지 않는 신념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로 청학동이 존재합니다. 변하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청학동을 찍는 저의 시선입니다. 그동안 저의 생활도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청학동 사람들에게 렌즈를 돌릴 때의 마음은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류은규 청학동이야기 ⓒ포스코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