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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대생의 고백 - 모질고 모진 여자의 일생, 신상옥 감독 1958작

이동권 2022. 7. 30. 12:08

변호사를 마친 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최 의원 ⓒ한국영상자료원


어려운 처지에도 냉철한 마음을 잃지 않은 것은 훌륭하다. 어떤 역경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신념을 지켜내는 것은 위대하다. 운명은 사람을 차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미 운명이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운명의 교묘한 장난에 삶이 농락당할 수 있다. 과거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살았던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랬다.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사회였다. 남자가 일가를 꾸렸고, 재산도 가장만 소유했으며, 대대로 큰아들에게 재산 승계 권리가 있었다. 이러한 남성우월주의는 사회 전반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남존여비라는 말이 용어화되고 관행이 될 정도로 남성의 지위나 권리는 여성보다 우위였으며 이념적, 도적적인 잣대는 여성에게 강하게 적용됐다. 또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남성 중심의 윤리관을 강제로 교육을 받았으며, 생활에서도 갖가지 제약을 감수해야 했다. 자신의 능력이나 개성을 발휘하기보다는 아버지의 딸로, 남편의 아내로, 아들의 어머니로만 살기를 강요당했다. 심하게 얘기하면 남편이 밖에서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거나 술과 도박으로 방탕하게 살아도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여자의 도리를 지켜야 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와 명태는 3일 만에 한 번씩 패야한다’는 속담도 그래서 나왔다.

1950년대 들어 여성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요구했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사회의 벽이 허물어지기를 원했고, 남성의 예속에서 벗어난 경제적 독립을 주창했다. 하지만 사회는 여성들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여자가 어디서’라고 압박하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 당시 여성들은 혼자 살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이혼하거나 소박맞은 여자는 행실을 문제 삼아 공동체에서 매장되기도 했다.

영화 <어느 여대생의 고백>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홀로 살아가는 여성의 아픔을 그린다. 주인공은 자기 자신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지조와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남성들은 그녀를 성적인 욕망을 해갈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양심을 팔면서 운명의 바퀴에 깔린 자신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는 강했다. 운명에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죄를 떳떳하게 고백했다. “전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에요. 전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 죄인은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저는 더 무서운 양심이 심판을 받았어요.” 그녀의 진심은 통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호소가 깊은 이해로 전이됐다.

 

1950년대 서울 한강 빨래터 전경 ⓒ한국영상자료원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소영 ⓒ한국영상자료원


법대에 다니는 고학생 최소영은 힘든 환경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공부에 매진한다. 하지만 시골에서 학비를 보내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하숙비를 조달하지 못해 어려움에 처한다. 하숙집 주인은 하숙비를 빌미로 소영을 겁탈하려고 하지만 소영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소영은 일자리를 구하다 친구 희숙을 만난다. 희숙은 과거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 국회의원 최림의 딸로 위장해 그의 집에 들어갈 묘안을 제시하고, 소영은 김 의원의 집에 들어간다. 그녀는 공부를 열심히 해 변호사가 되고 힘겹게 살아왔던 한 여죄수의 변론을 맡는다. 소영은 여성이 홀로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겨운지 눈물을 흘리면서 강변한다. 소영은 변론을 마치고 최 의원의 부인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하지만 소영의 변론에 감동을 받은 부인은 이미 소영이 남편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그녀를 용서하고, 자신의 딸로 받아들인다.

이 영화에는 한국 영화 최초로 여성 변호사가 등장한다. 당시 사회상으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케릭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여성들에게 대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큰 인기를 끌었다. 신상옥 감독은 이 작품이 히트하면서 한국 영화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렸다.

이 영화는 제1회 문교부 우수국산영화상과 여우주연상(최은희), 여우조연상(황정순)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