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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 - 조선 최고 종쟁이가 되기까지, 양주남 감독 1958년작

이동권 2022. 7. 30. 14:13

종쟁이에게 고령사 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듣는 영실 ⓒ한국영상자료원


경지에 쉽게 오를 방법은 없다. 주의 깊게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예술은 답하지 않는다. 가끔 천성적인 소질을 탓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예술은 재주보다 노력의 영향이 크다. 재주가 없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노력해봤는지 따져볼 일이다. 아주 유명한 예술가도 처음에는 다 미숙했다.

뜻도 높이 세워야 한다. 뜻이 높지 않으면 최고의 예술가가 될 수 없다. 마음가짐에 따라 행동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예술은 무엇보다 인간을 지향해야 한다. 힘겹고 고단한 인생이지만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예술가의 책무다.

영화 <종각>은 조선 최고의 종을 만드는 사람을 꿈꾸는 예술가의 이야기다. 그의 꿈은 젊은 시절에 사랑했던 여인과의 약속에서 시작됐다. 보통 약속은 말과 행동을 지키는 것이지 감정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그녀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번번이 운명의 장난에 놀아났다. 그럼에도 그는 고독하지 않았고, 최고의 종을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지나친 욕망과 애착이 그를 망가뜨렸지만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시간이 주는 지혜를 깨달을 수 있었다. 살면서 누군가와 약속이 없는 인간처럼 불우한 사람이 있을까. 그렇기에 약속은 더더욱 열성과 진실로 이행해야 할 가치가 있겠다.

이 영화는 조선의 쇠붙이를 모두 수거하는 금속 회수령, 종군위안부로 잡혀가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여인 등을 통해 일제 말기의 시대 상황을 가슴 아프게 그려낸다. 이야기의 전개는 늙은 ‘종쟁이’와 고아로 자란 영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로 진행된다. 회상하는 사람의 내레이션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플래시백 기법은 한국 영화사상 이 영화에 최초로 사용됐다.

종쟁이와 옥분이 ⓒ한국영상자료원
종을 숨기려는 종쟁이 ⓒ한국영상자료원

 

종쟁이는 종소리를 좋아하는 옥분이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옥분은 급사해버린다. 종쟁이는 옥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홍련사라는 절에 들어가 종 만드는 법을 배운다. 홍련사에 있는 종은 운보와 경산이라는 두 사람을 경쟁시켜 만든 종이다. 두 사람이 만든 종 중에 운보의 종이 선택돼 홍련사에 걸리고, 경산의 종은 땅 속에 묻힌다. 종쟁이는 경산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고 땅 속에 묻힌 종을 꺼낸다. 그리고 복수심에 홍련사의 종을 훔치다 잡혀 아내와 함께 마을에서 쫓겨나 고령사로 간다. 종쟁이는 운보와 경산의 종을 합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을 만든다. 하지만 아내는 아기를 낳다 죽고, 홍수에 딸을 잃어버린다. 침략전쟁을 벌인 일제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조선에 있는 모든 쇠를 강탈하고, 종쟁이의 종마저 공출될 운명에 처한다. 종쟁이는 “이 종이 대포알, 총알로 변한다니”라고 울부짖으며 종을 숨기려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는다. 영실은 고아로 자라다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로 갔지만 직업소개업자에 속아 광산에서 몸을 파는 여자로 팔려간다. 영실은 종군 위안부로 팔려가기 직전에 도주해 고령사에 숨는다. 거기에서 영실은 자신의 아버지일지 모르는 종쟁이를 만난다.

<종각>은 민족문학 잡지 ‘백민’에 발표됐던 강노향의 소설 ‘종장’이 원작이다. 강노향은 이 영화에서 각본 겸 제작자로 참여했고, 이 영화는 해외 영화제 출품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1시간가량 고령사의 종이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하고, 나머지 20분가량은 고아로 자란 영실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영화에서 배우 문정숙은 옥분이와 아내, 영실 3역을 맡아 당시 화제가 됐다.

이 영화는 1959년 제1회 문교부 선정 우수국산영화상 작품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