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면 누구나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두려움에 잠시 물러서기도 하고, 어떻게든지 이겨내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분위기에 적응하며 상황을 주시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딱히 옳다고 얘기할 수는 없겠다. 단지 어떤 고난에도 좌초되지 않고 버텨내는 것이 중요하다고는 말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초극이자 저항이며, 인간만이 지닌 불굴의 의지다.
영화 <느티나무 있는 언덕>의 주인공은 고아다.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죽고, 어머니는 아들을 버리고 상경해 재혼했다. 그 이유를 모르는 아이는 날마다 느티나무가 있는 언덕에 올라 엄마를 기다린다. 아이는 혼자라는 절망감도 크지만 “니 애미가 서방질해서 도망갔다”고 놀리는 친구들,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어른의 질투심에 극도의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아이는 운명에 무릎 꿇지 않고 훌륭하게 자란다.
세상살이가 어렵다. 경쟁도 치열하고,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사람처럼 잔인한 동물도 없다. 측은지심은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아니 살다 보면 연민하는 감정은 아무에게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용기가 있고 명예를 중시해서다. 전쟁 중에도 적장을 공포에 빠뜨리는 이들은 전략이 뛰어난 장수가 아니라 용기 있는 병사들이었다. 자신의 목숨보다 조국의 운명과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병사의 용기는 전략가의 가장 중요한 힘이자, 적장의 마음까지 움츠려 들게 하는 무기였다.
이 영화는 고통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보다 잘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욱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자살은 스스로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지만 잘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것을 참고 이겨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용기로도 이겨내지 못할 때가 온다. 그럴 때는 가만히 견디고 참아내는 것이 용기다. 언제까지 계속되는 불행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자연사와 동등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어쩌면 인간다운 것이다.
국민학교(초등학교) 6학년인 용문은 매일 느티나무 있는 언덕에 올라가 넋을 잃고 엄마를 기다린다. 용문은 엄마가 집을 나갔다는 것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화가 난 용문은 참지 못하고 아이들과 싸운다.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 정섭은 용문을 이해하고 사랑한다. 또 동료 교사 인애도 용문을 아끼게 되고, 정섭과 인애는 애인이 된다. 정섭은 용문과 함께 엄마를 찾아 서울로 간다. 하지만 엄마가 다른 집에 시집간 걸 알고 실망한다. 인애를 좋아하는 동료 교사 성칠은 질투심에 정섭을 모함하고, 정섭은 학교를 떠난다. 정섭은 용문과 함께 서울에 올라가 함께 산다. 용문의 엄마는 남편 몰래 용문을 뒷바라지하다 들키고, 화가 난 남편이 사고로 죽자 살인 혐의로 감옥에 간다. 정섭도 갑자기 군 소집영장이 나와 군대에 가고 용문은 홀로 남는다. 그래도 용문은 좌절하기 않고, “용기를 내서” “명랑하게” 신문배달을 하며 열심히 공부한다. 인애는 교도소에 간 용문을 만나기 위해 교도소로 가고, 정섭도 외출을 나와 교도소로 향한다. 정성과 인애는 교도소에서 만나 서로 용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전쟁고아로 살거나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했던 1950년대 소년의 삶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불우한 환경에서도 용기와 자신감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간다. 조금만 힘들어도 투정부리며 포기해버리는 젊은이들을 부끄럽게 할 영화다.
이 영화는 감정을 울컥하게 만든다. “어머니 보고 싶었어요”라고 울면서 달려드는 아들을 보면 눈물이 나와 참을 수 없다. 홀로 남겨진 아들을 위로하는 듯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도 구슬프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한다. “용문아 이 애미를 용서해라. 널 버리고 도망친 애미를.” 그러나 아들은 단단하다. 감옥에 면회 간 아들은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울지 마세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어요”라고 다짐한다. 참 잘 장하고 효성 지극한 아들이다.
이 영화에서는 “용기를 내서” “명랑하게”라는 말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마치 관객들에게 힘내서 살자고 응원하는 것처럼. 한편으로는 세상에 전쟁이 없고 무한한 평화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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