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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결혼 - 사랑의 최고 가치는 이타심, 이병일 감독 1958년작

이동권 2022. 7. 30. 12:00

신혼여행에서 소박맞은 큰딸 숙희 ⓒ한국영상자료원


인간은 사랑에 쉽게 빠진다. ‘사랑이 별 거냐’며 애써 부인하는 사람도 있지만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한결같이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사랑의 가치 중에서 이타심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선택을 하거나 판단을 내릴 때도 이타적인 마음으로 살피면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요즘 결혼하는 부부들 중 이타심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과열 경쟁에 노출되고, 주위를 돌아보는 부모를 보지 못하며 성장한 까닭이다. 이런 친구들이 결혼하면 ‘우리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다. 그런다고 불행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단란하고 여유롭게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외롭고 힘겨운 일이 닥칠 때는 다르다. 혼자 버둥거리고 해결하려다 꼬꾸라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결혼할 상대를 고를 때는 배우자의 배경보다는 얼마나 이타적인 사람인지 먼저 살펴보는 게 좋겠다. 행복한 결혼생활이란 죽을 때까지 머리를 맞댄 채 서로 얘기하며 부대끼는 것이다. 사랑의 감정은 길지 않기 때문에 이타적인 마음이 없이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 영화 <자유결혼>에서 세 딸들이 그토록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결혼을 하려고 했던 이유도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배우자의 얼굴도 모른 채 부모가 맺어준 짝과 결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1950년대도 다르지 않아서 중매결혼이 성행했다. 결혼 상대가 어떤 성격이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보다 사회적 지위와 생존이 우선시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자유결혼>은 과거의 결혼제도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연애하고 싶은 1950년대 젊은이들의 사고를 투영한 작품이다. 상상이 가지 않겠지만, 그때는 자유로운 연애도 허용되지 않았고, 동거 같은 것은 꿈에도 꾸지 못했다. 요즘은 결혼을 억압이나 계약 관계로 생각하고 평생 독신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는 그랬다.

이 영화는 결혼제도 속에 숙주처럼 자리한 남성위주의 가부장적인 면을 부각한다. 연애결혼이 문제가 되는 진짜 이유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여고 시절에 사랑했던 오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첫날밤 소박을 맞은 딸과 딸의 소박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부모의 태도는 그 당시 전형적인 남성우월주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셋째 딸의 발언은 당시 젊은이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셋째 딸은 연애결혼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아버지에게 “위험성 많기로는 중매결혼이 더 하죠. 성격도 취미도 이해할 수 없는 남남끼리 잠깐 동안 한자리에서 마주 보고, 그것도 진실한 태도를 보는 건 아니지요. 그리곤 쓸데없는 말 몇 마디 주고받곤 그다음에 예스나 노냐거든요. 이 얼마나 위험한 행위예요”라고 말한다. 이에 아버지는 “내가 주장하는 건 연애결혼도 아니고 중매결혼도 아닌 것, 말하자면 중매연애결혼이라고 할까. 중매결혼 연애결혼을 절충하는 거야. 절충이란 언제나 결과가 좋은 거거든. 즉 결혼 적령기가 된 자녀를 가진 부모는 먼저 적당한 결혼 후보자를 선택하고, 그들이 교제해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지”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가난한 문학청년인 가정교사 준철과 사랑에 빠진 둘째 딸 문희 ⓒ한국영상자료원
전도유망한 사업가 대신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조교수를 선택한 셋째 딸 명희가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는 모습 ⓒ한국영상자료원


고박사에게는 세 딸이 있다. 큰딸 숙희는 신혼여행 첫날 밤, 과거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며 용서해달라는 남편의 고백을 듣고 자신도 역시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남자는 파혼을 한 뒤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숙희는 충격으로 집에서 두문분출하며 4년을 보낸다. 둘째 딸 문희는 가난한 문학청년인 가정교사 준철과 사랑에 빠지지만,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자 가출까지 감행한다. 셋째 딸 명희는 어머니가 소개한 전도유망한 사업가 청년보다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조교수를 선택한다. 이후 숙희의 남편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을 한 뒤 귀국해 재혼한다. 모두 부모의 기대와 반대되는 결혼 상대를 골라 연애결혼에 골인한 셈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국립극장 현상 공모 입선작인 하유상 작가의 희곡 <딸들은 연애자유를 갈구한다>다. 이 작품은 그 당시 연애와 결혼 풍습을 유쾌하게 그려내며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짓는다. 한국전쟁 후 극작가들은 당대의 사회와 가치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 작품도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 차이, 남녀 간의 애정 윤리를 주제로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젊은이의 감각과 의식 변화를 주목해 그린 것이다.

이 영화는 제6회 아시아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 제1회 문교부 우수국산영화상 작품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또 제3회(1959) 국제영화상 작품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