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이경순 감독 -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내민 도전장

이동권 2022. 7. 29. 17:50

이경순 감독과 함께

 

2004년 12월 7일. 국회의사당에서 이경순 감독을 만났다. 다큐멘터리 영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국회 대회의실에서 상영되는 날이었다. 이날 행사는 이영순 의원실과 계승연대 의문사건 특위에서 주관했다.

이 영화는 의문사 유가족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와 제1기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위원회의 활동을 담은 필름으로 은폐된 죽음의 기록, 뒤틀린 권력의 실체, 진상위원회의 미비한 권한, 높은 대의 앞에 고개를 떨구는 운동가로서의 성찰, 죽은 자들의 동지였던 민간조사관들과 군···기무사·국정원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의 첨예한 갈등을 담았다.

영화 상영은 의문의 죽음을 위로하는 묵념처럼 숙연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영화 종영이 가까워지면서 고 김성수 학생의 어머니 전영희(66세)씨의 흐느낌이 거세어지자 가슴을 후벼 파는 슬픔이 고인의 깊은 뜻을 잇자는 투쟁의 마음으로 이어져 국회 대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국회 대회의실을 찾은 의문사 유가족들은 이구동성으로 "진실이 밝혀지고 사과를 받는다면 용서할 수 있다"며 "국가 권력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처벌과 보상이 아니라 과거청산과 명예 회복에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고 김성수 학생의 어머니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피눈물로 살아온 세월이 18년입니다. 멀쩡한 아들이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게 말이 됩니까. 우리 아들이 1986년 서울대학교에서 입학해서 민주화 운동을 했는데도, 그 죽음의 행적이 민주화 운동으로 증명할 수 없어서 진상규명이 힘들다니, 말도 안 됩니다. 절대로 용서 못합니다. 우리 아들이 왜 죽었는지 의문이 해소되는 날까지 투쟁할 겁니다. 오늘도 오전 10시부터 지금까지 국회에 있었습니다. 추위에 이는 부딪히고 무릎은 아파 걷기도 힘듭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습니다. 내일도 여기로 나올 겁니다."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또 사북노동당사건 피해자 전호덕(63세) 씨는 "군사독재 시절, 사북노동당사건으로 잡혀 들어갔는데, 나는 배운 것이 없다고 3일 만에 풀려나고 다른 사람들은 다 구속되었다"며 수사 도중 고춧가루 물고문을 당했던 일을 털어놓기도 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경순 감독이 '무엇으로 사는가'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 같았다. 

"시대는 변하는데, 변해야 할 것은 변하지 않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 경계를 깨면서 변화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되물어보자고 했다. 과연, 우리가 무엇으로 사는지. 이 영화의 메시지는 하고 싶은 일은 뒤로 미루더라도 해야 할 일은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참다운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래야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이전 작품, 민들레에 대해서도 간략한 소개를 부탁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굴곡도 많았고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민주쟁취, 독재타도, 노동 인권을 외치며 의문의 시체가 되었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민주화의 투쟁 속에서 죽음의 역사는 한국의 민주화 과정만큼 힘들었고 길었다. 이런 과정에서 죽은 이의 유가족들은 1986년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을 결성하고 다시 이들의 명예회복과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힘겨운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운 가족투사는 이렇게 탄생되었고 민들레는 이들의 투쟁을 기록한 영화다."

톨스토이의 문학을 탐미했던 시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에 진지한 해답을 구한 적이 있다. 자연은 변함 없이 환하게 반짝이며 시간의 아름다움을 찬미할 텐데, 인간이 꿈꾸는 주류의 삶이란 고작 일신의 행복과 풍요의 시간이 쫓아가면서 살아가는 게 전부가 아닐까 하는 우울한 고민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날 상영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바로 톨스토이 문학으로 겪었던 죽음의 자화상과 비슷한 주제를 지닌 영화가 아닌가 싶었다. 이 영화는 죽음이라는 결말을 선명하게 떠올리도록 하면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했고, 인간의 숙명을 상징하는 묘비와 같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강렬한 물음표에 매달리게 했다.

인간은 정말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일 것이다. 삶은 살아감으로 만들어지고 사랑으로 가치를 더하는 법이다. 사랑은 정의와 희생으로 나타나고 용기와 의지로 강건해진다. 아마도 이경순 감독은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2006년 이경순 감독

 

2006년 서울여성영화제에 참여한 이경순 감독을 다시 만났다. 최근 '한기총'에서 영화 '다빈치코드'에 대해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내서다.

 

이경순 감독은 한기총의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에 대해 쇼킹한 기독교 권위주의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그동안 국가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왔던 것과도 일맥상통하다고 주장한다.

이 감독은 "종교는 사람에게 풍성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지향하도록 하는 것인데, 오히려 좁게 만들고 있다"면서 자신의 영화 "'쇼킹패밀리'에서 보이는 가족이기주의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독교 권위주의는 자신의 것 외에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 또 "신화나 종교도 영화의 범주에 포함되는 영역이지만 종교로 접근하면 통제가 많다"면서 "종교가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사고를 차단하고 통제하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쇼킹패밀리'는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이경순 감독의 영화다. 이 영화는 재치넘치는 유머와 흥미진진한 화법으로 남성의 가부장적인 문화를 까발린다. 그러면서 가정폭력과 아동학대가 있는 가정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보이는 가정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쇼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이경순 감독은 "이번 한기총의 행동은 관객들의 사고체계를 믿지 못해 통제하려다 벌어진 일"이라면서 "우리 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위해서라도 종교가 표현의 자유를 막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아이들과 어른들의 생각은 다른데, 이를 규격화시켜 다른 생각의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 이번 한기총의 행동"이라며 :종교를 믿거나, 믿지 않거나, 사람들을 교회의 이름으로 사육하겠다는 이런 행동은 한마디로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종교를 영화의 소재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성서도 역사이고, 이후 사람들이 해석하는데 있어 새롭게 볼 수 있는 문제"라면서 "다비치 코드가 진짜이건, 가짜이건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통제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2019년 이경순 감독

이후 이경순 감독의 근황을 확인한 건 영화 '애국자게임2 - 지록위마'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낱낱이 기록한 책을 편집했다.)

 

이 책은 2016년 이카로스의 감옥으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진실을 파헤쳤던 문영심 작가가 썼다. 

“바쁘다. 복잡하다. 너무 힘들다. 그런데 사건은 많고 소통은 안 된다. 내 문제도 버거운 데 연대할 일은 많다. 연대는 하지만 내용은 잘 모른다. 전문가는 많은데 한 가지 분야만 전문가다. 네트워크는 거미망처럼 넓은데 내 생각을 말하는 게 겁난다.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다. 사람들은 점점 골방에서 세계와 소통한다. 익명의 주장들이 인터넷에 등장하고 버젓이 뉴스가 된다. ‘국회의원 이석기가 내란음모를 했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정말 나의 생각인 것일까 사상의 자유는 한물간 이야기고 검열은 모든 분야에 일상이 되었지만, 모두가 전력을 다해 살아내야 한다. 한마디로 우린 모두 좀비가 됐다는 얘기다.” - 영화 ‘애국자 게임 2- 지록위마’ 경순 감독의 제작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