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권태균 사진작가 - 1980년대 기억나세요?

이동권 2024. 6. 15. 20:21

권태균 사진작가


인생이 무상하다. 내가 권태균 작가를 만났을 때, 그는 1980년대 이후 2010년대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2010년대가 무척이나 기대됐다. 그때와는 매우 다른 옷, 다른 머리스타일, 다른 풍경, 다른 가옥 등을 포착한 사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2015년 1월 첫 번째 사진집을 준비하다가 갑작스럽게 타계하고 말았다.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버스 안에서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가족, 군기가 바짝 든 군인과 그 옆에서 머리카락을 빗고 있는 숙녀, 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인사하는 노인들, ‘몸빼’를 입고 곡식 포태와 함께 경운기에 실려 가는 아낙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을숙도의 노인들 등 하나 같이 정겹고 아스라한 흑백사진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이미지 뒤로 아련한 ‘향수’가 회오리처럼 몰아쳤다. 위태롭고 조마조마했던 그때 그 시절의 평범한 풍경에서 현재의 우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앙상하게 말라붙은 아카시아나무 가시 같은 세상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권태균(1955~2015) 작가의 작품은 잊고 지냈던 과거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그저 낯설고 신기하고 재미난 구경거리가 아니라 불꽃같은 욕망이 숨구멍까지 들어찬 도시인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열심히 일하는 것을 낙으로 살고, 가족 친지를 부양하는 것을 복이라 여기며, 이웃과 나누는 것을 덕이라 알았던 과거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제 많지 않다. 우리가 언제부터 잘 먹고 잘 살았지, 어떻게 하다 항상 1등만 해야 하며 나만 보면서 살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그의 작품은 그런 도시인들에게 브레이크를 건다. 1982년 충북 충주의 한 집 앞 평상에 누워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작은 아이, 김해 가을걷이가 끝난 한적한 밭을 거니는 아낙을 통해 ‘인간의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내 사진을 보면서 과거에 대한 이미지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하지만 전혀 그런 의도는 없었다. 내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길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냥 인물사진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고, 사람과 주변 환경에 주목했다.”

 

 

권태균 사진작가


권태균 작가의 작품은 질서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꾸미질 않아서다. 뭇 화려하고 현란하기만 한 작품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 담긴 80년대의 모습들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도 가치가 있다.

그의 작품은 다큐멘터리지만 굉장히 서정적이다. 작가로서 감각에 충실했고, 말을 거는 듯한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인물사진, 그것도 활동적인 인물을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흑백필름과 인화액이 만들어낸 느낌도 영향을 미친 듯싶다.

그래서인지 괜한 생각이 들었다. 권태균 작가가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지 않고 영화를 했더라면 더 괜찮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그래서 물었다. 왜 사진작가가 됐는지.

“사진을 전공했다. 당연히 사진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처음 안동댐에서 이주하는 주민 모습을 찍다 임하댐 인근 주민들을 조직적으로 촬영했다. 이 사진이 내가 처음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은 것이다. 이 사진들 중 일부는 이미 발표했다.”

권태균 작가는 1980년대 찍었던 사진들을 네 번으로 나눠서 전시했다. 나는 세 번째 전시 때 그를 만났다. 권 작가는 세 번째 사진전에서 ‘휴가 중의 군인-서울(1983년)’, ‘버스 안의 부부-서울(1982년)’, 여의도 광장에서 ‘잠자는 아버지와 아이-서울(1983년)’, ‘졸업식장의 아버지-서울(1982년)’ 같은 작품을 추천했다. 

“휴가 중인 군인이라는 작품은 군인을 찍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정말 반듯하게 서 있더라. 그런데 한 여자가 걸어와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었다. 그때 군인 앞으로 한 사람이 지나갔다. 내 관심은 군인에 있었는데, 전혀 관심 없는 두 사람이 작품에 들어왔다. 이것이 바로 내 사진이다.”

예술은 인간의 무수한 고독을 달래주었던 매개체였다. 인간은 자연과 동화하면서 스스로 완벽하거나 위대해지려는 마음을 겸손함으로 변용했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권태균 작가는 한없이 흩어지는 시간과 맞서면서 현실을 비춰냈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며 사는 우리들에게 흑백의 향기를 문지르며 주위를 둘러보게 만들었다. 권 작가는 여전히 세상을 벗 삼아 돌아다니는 나그네처럼 포근한 미소를 떨어뜨리면서 사람들에게 발그레 인사를 건넨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관심조차 없고, 석양 녘의 형벌을 잊어버린 채 종일토록 위만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얘기한다. 우리, 무엇을 잊고 지내지 않았냐고. 그것이 혹시 시간이나 사람이 아니었냐고.

 

 

휴가중의 군인-서울(1983년)

 

버스안의 부부-서울(1982년)

 

계단의 아이들 - 인천(1982년)

 

기다리는 사람들-서울(198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