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선 때였다. 안기부는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려고 북풍공작을 벌였다. 북한의 대남도발을 역이용한 선거전략을 펼쳤고 김대중 후보의 북한자금 수수, 국민회의의 연방제 수용과 80억 원 지원 제의 같은 갖가지 허위 사실까지 유포하며 빨갱이 논쟁을 유발했다.
정당은 자기 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국을 끌어가려고 프레임을 띄운다.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틀을 정해서 국민들이 그 틀을 따라 시각을 정립하고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해주길 원한다.
정당이 제시하는 프레임은 흔히 수구, 보수, 중도, 진보라고 하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양하고, 매우 첨예하게 격돌한다. 선거 때가 되면 정당 간에 공방을 벌이는 사안이 많아지고, 끊임없이 네거티브 비방 전략이 펼쳐지면서 프레임의 스펙트럼이 극과 극을 달리는 경우가 생긴다. 국민들은 이를 서로 비교해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그 틀에서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를 선택해 한 표를 행사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정당이 띄우는 프레임을 초월하는 더 큰 틀이 존재한다. 어떤 조언이나 읍소에도 불구하고 국민 대다수는 그 프레임에 갇혀 천편일률적인 투표를 한다. 이른바 북풍(北風)이라고 불리는 북한 관련 프레임이다.
통일부가 최근 총선을 앞두고 호들갑이다. 북한 매체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모략하고, 정부를 위협하고, 한국 사회의 분열을 조장한다'며 북한의 불순한 총선 개입 시도를 경고하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도 북한이 중거리급 탄도미사일 한 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한 것을 두고 국무회의에서 그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통일부가 말한 북한 매체들의 보도는 아예 듣도 보도 못한 뉴스였다. 아니, 그 뉴스들은 대체 어디서 볼 수 있단 말인가? 일반인은 접근이 불가능할 뿐더러, 나 같은 경우 가끔 TV에서 나오는 대남 투쟁, 자화자찬 일변도의 북한 뉴스에는 관심조차 없다.
미사일은 또 어떤가? 과거에도 선거 때마다 부지기수로 일어난 일이라서 특이동향 같지 않았다. 위기감도 느끼지 못했다. (통일부나 군 당국 관계자라면 북한이 동계훈련을 마치고 매년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국가급훈련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도발이라고 할 수 있는가? 북한의 국가급 훈련은 육해공군과 특수전 부대가 전국에서 동시에 진행한다.)
나는 문득 정부가 총선이 닥쳐오니까 북한 도발 프레임을 띄워서 북풍몰이를 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오죽하면 더불어민주당에서 '윤석열 정부가 북풍공작으로 선거에 개입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국가정보원 감시팀까지 구성한다고 했을까?
북풍을 일으키는 공작 중에는 종북몰이와 간첩조작도 있다. 최근에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비슷한 조짐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같은 뉴스도 나오고, 더불어민주연합을 두고 종북 성향의 진보당과의 연대 같은 말도 안 되는 공격도 있었다. 나는 이같은 일련의 일들을 북풍공작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이젠 속을 국민도 없다. 북풍공작에 휩쓸려 무조건 보수세력을 지지하는 시대는 지났을 뿐더러 여야 모두 북한 도발에 대해 비판적이라서 공격할 빌미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북풍 조작을 의심받으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정당이라면 정책과 인물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 진정 국민을 생각한다면 정당의 공적인 책임과 역할에 당력을 집중해서 메시지를 내려고 노력해야지 시대착오적인 북풍공작은 아니다.
1997년 김대중 후보는 대선에 승리했다. 대선 전에 한나라당의 정재문 의원 북한 접촉설, 안기부의 대선 개입 정보 같은 북풍공작을 누군가가 김대중 후보와 국민회의 측에 알려 대비할 수 있었다. 북풍공작을 알린 주인공은 영화 <공작>에서 황정민이 맡았던 인물, 흑금성이었다.
우리 국민은 모두 북풍을 감시하는 흑금성이자 성숙한 유권자다. 이제 북풍공작은 절대로 먹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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