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에도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낯선 땅에서 고군분투하는 탈북민을 그린 ‘로기완’을 필두로 1971년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다룬 ‘하이재킹’이 개봉했다. 7월 3일에는 북한군 병사의 목숨을 건 탈북을 다룬 ‘탈주’가 개봉되고, 하반기에는 가짜 찬양단을 조직한 북한 장교의 이야기를 담은 ‘신의 악단’도 선보인다. 이밖에도 여러 다큐멘터리나 상업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거나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국 영화인들이 북한을 영화 소재로 차용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조국 분단은 우리 민족의 한 많은 정서를 대변하는 소재이고 북한 이야기는 상업적으로도 보증된 재료이기 때문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강철비’, ‘베를린’, ‘공조’, ‘공작’ 등 너무나 많은 영화들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요즘 나는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가 발표될 때마다 염려되는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영화인들이 그릇된 공명심에 사로잡혀 한반도 평화와 민족 번영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두렵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 사회가 점점 극우화, 양극화되고 대결정치가 가속되면서 민주주의와 도덕적 가치가 허물어지고 있다. 대북 기조도 바뀌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을 적대시하면서 선제타격, 2~3배 대응 원칙을 주창했고,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진했다. 또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며 미국 전략핵무기 재배치를 거론했고, 2023년 한 해 280일 동안 전무후무할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했다.
윤 대통령은 통일부의 주요 업무도 ‘남북 대화 협력’에서 ‘북한 실상 알리기’로 전환시켰다. 과연 통일부는 균형적이고 객관적이며 사실에 근거한 사업을 실행할 수 있을까? 아마도 통일부는 (윤 대통령의 대북 기조로 봤을 때) 반북 여론을 확산하는 데에만 화력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불어 닥치고 있다. 주적으로 북한을 공표하고, 국민에게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높이면서 전쟁 발발의 원인을 북한에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쟁의 불안을 해소할만한 뚜렷한 해법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2의 한국전쟁은 반세기가 넘는 동안 서로 으르렁거리며 대적해 왔던 남과 북을 또 다른 역사의 비극 속에 빠지게 할 것이다. 이미 영화에서 직간접적으로 증언된 미래다. 이러한 때 영화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물론 국민들은 북한을 악마화한 영화에 더는 속지 않겠지만) 한반도 평화와 민족 공영에 기여하지 못할 망정 북한을 악마화하는 여론을 형성하는데 일조해서는 안된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한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때, 건강한 보수와 진보를 지향한다면 북한을 천추의 적으로 간주하는 영화를 만들어 이 땅의 평화와 안정에 어깃장을 놓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북한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의 변천사
1945년 해방 후 조선은 미국과 소련에 분할 점령됐다. 신탁통치를 둘러싸고 이념 갈등이 폭주하면서 점점 헤어 나올 수 없는 분단의 수렁에 빠졌다. 1950년 6월 25일 북조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조선을 침공하는 폭풍작전을 펼쳤다.(남침) 한반도는 잿더미가 됐다. 사람들이 죽었고, 민간인이 학살됐으며, 이산가족이 생겼다.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과 한국전쟁에 개입하면서 남북은 완전히 허리가 잘렸고, 반공과 반미가 서로 맞부딪치면서 우리 민족은 치열하게 대립했다.
조국이 분단된 뒤 영화인들은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한민족의 고통, 비참한 가족사, 전쟁의 잔인성 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평화와 공존의 의미를 물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대부분 북한을 증오했고, 반공을 외쳤다. 북한 사람들을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광으로 묘사했고, 한반도를 적화통일하려는 냉혈한으로 그렸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거 발표됐다. 내용은 전쟁의 비극과 가족애와 사랑을 담았지만 반공과 국군의 활약을 중점적으로 부각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영화로는 1961년 ‘5인의 해병’, 1963년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4년 ‘빨간 마후라’ 등이 있다. 이밖에도 1965년 ‘남과 북’과 ‘언제나 그날이면’, 1966년 ‘군번 없는 용사’과 ‘대폭군’ 같은 영화들도 발표됐다.
1970~80년대에도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들의 내용은 비슷했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데다 경제발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한국전쟁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다. 이 시기에는 영화 제작 편수도 많지 않았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이 남긴 비극을 본격적으로 꺼내놓았다. 1990년 ‘남부군’을 필두로 1991년 ‘은마는 오지 않는다’, 1992년 ‘하얀전쟁’, 1994년 ‘태백산맥’ 등 한국전쟁을 다각도로 조명한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반공영화는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이 화해무드에 들어서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반공이 아니라 전쟁의 비극을 중점적으로 담아낸 영화들이 제작됐고, 같은 민족끼리 서로 다투고 싸우는 아픔을 섬세하게 그려냈으며, 이 지독한 싸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반 민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단의 문제를 다룬 영화는 급격하게 냉각됐다. 정치가 뒤로 돌아가고, 냉전의 시대가 도래하자 영화판에도 덩달아 반공바람이 불었다. 영화 ‘포화 속으로’, ‘간첩’, ‘베를린’ 개봉에 이어 북한을 냉전시대의 주적으로 간주한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등이 계속해서 개봉했다.
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공영화라고 정확하게 규정하긴 어렵지만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연평해전’ 등으로 북한 혐오 메시지를 띄웠다. 하지만 박근혜가 탄핵되면서 반공영화는 급격하게 몰락했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상업 반공영화는 더는 발을 붙이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 3년 차에 들어섰다. 윤 대통령은 연일 반공과 자유를 외치고,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 가릴 것 없이 보수, 극우 인사를 공직에 앉히고 있다. 문화계도 마찬가지다. 또다시 북한을 악마화하는 영화가 제작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런 걱정이 나만의 괜한 우려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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