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생각나무

왜 한강에 가셨어요? 세상과 단절 선택하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

이동권 2024. 3. 19. 16:30

반포대교 밑에서 한강에 투신한 사람을 구조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119


새벽 1시. 폐 한쪽을 들어낸 것처럼 마음이 답답했다. 숨 가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불빛이 전혀 없는 밤하늘처럼 짙고 검은 먼지가 내려앉은 한강대교 위를 걸으면서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걱정해야 했다. ‘혹시’가 부른 불안감이었다.

셔츠 위에 까만 조끼를 입고, 까만 모자를 손에 든 한 중년 남자가 교각 이음새 부근에 앉아 '깡'소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그는 간간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훑어보았지만 시종일관 시선은 강물에 고정돼 있었다. 술 취한 젊은이들의 고함 소리에도, 연인들의 낯 뜨거운 애정행각에도, 오토바이 폭주족들의 배기통 소음에도 개의치 않았으며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그의 눈빛은 강 끝을 응시할 때 매우 애달프게 보였다. 뭔가 커다란 고통에 직면한 듯싶었다. 하지만 발밑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때는 잔인한 복수심 같은 것이 선명하게 서려 있었다. 검은 눈동자 안에는 세상에 대한 침울한 반항이 스며들어 있었고, 자신의 운명을 예고하는 애잔한 심상들도 함께 뒤섞여 있었다.

그와 몇 차례 눈을 마주쳤다. 말을 걸어보고 싶어서였다.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기에 앉아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말을 건네지 못했다. 그의 눈빛이 ‘날 그냥 내버려 둬’라고 강렬하게 애원했던 까닭이다.

“왜 한강에 가셨어요?”
“밑에서 불러요. 어서 뛰어내리라고.”

송 모(35세) 씨는 가정사가 뒤범벅되고 돈벌이도 시원치 않아 한강을 찾았다. 마케터로 일하던 출판사가 망한 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살다가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그는 ‘한강’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심란하고 괴로웠던 당시의 심정이 떠올랐는지 순간 예민해졌다. 

“몇 번 자살하려고 했는데 뛰어내리지 못했어요. 한 번은 배(유람선)가 있어서 뛰어내리지 못하기도 했지요. 이런 세상에서 살아 뭐 하나 하고 한강에 갔다가 그래도 다시 잘 살아봐야지 다짐하면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의 어깨너머로 냉담하리만큼 무감각하고 침울한 기운이 으슬으슬 흘러내렸지만 말소리만은 간곡하고 가냘팠다. 특히 ‘한강’이라는 단어의 악센트는 유달리 약했다. 부정할 수 없는 인생의 허무와 무상 때문일 것이다.

 

그는 나의 시선을 거두고 등을 보이며 말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말하고 싶지 않아요. 한강에 간 이야기는.”

김 모(55세)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중소기업이 망한 뒤 빚 재촉에 시달려오다 자연스럽게 세상의 짐을 놓기 위해 양화대교를 찾았다. 대기업에서 납품 단가 인하를 계속 요구한 데다 공공구매 경쟁 입찰에도 끼어들기 어려워 결국 판로가 막히고 말았다.

“세면대야에 담겨있던 물에 달빛이 은은하게 반사되는 것을 보면서 지독한 가슴앓이를 했죠. 지금도 죽지 못해 사는 거예요.”

다행스럽게도 그는 양화대교 상단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에 발각돼 목숨만은 건졌다. 현재 그는 친척이 경영하는 한식점 일을 돕고 있다.

“양화대교에 간 이유요? 배신감이었죠. 돈 때문에 친구들이 등 돌리는 모습도 그렇지만 이 세상이 싫었거든요. 이런 X 같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소기업이기에 특혜를 달라고 하지 않아요. 공정하게 경쟁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겁니다.”

믿었던 만큼 상처도 컸다. 자사의 제품이 좋으면 누구든지 반겨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너무 달랐다.

“지금은 죽으려고 해도 용기가 없어요. 시기를 넘기고 나니까. 근데 자살을 시도했을 때 주위 사람들 반응이 영 좋지 않았어요. 육신 멀쩡한 놈이 지질히도 못났다고요. 그래서 사람들한테는 죽으려고 한강에 갔던 얘기는 안 해요.”

그는 자신의 삶을 읽어내려는 듯 찻잔을 들고 잠시 깊은 명상에 젖었다.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하루를 사는 사람에게는 볼 수 없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었다. 주위 사람들한테도 무척 서운했던 듯싶다.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런 순간은 대개 한 인간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경험을 할 때 찾아온다.

“제가 전태일 열사처럼 큰 뜻을 품은 인물도 아니고, 살아봐야 빚 갚다가 끝날 인생인데 사람들은 그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갑자기 못난 놈 취급하면서 걱정해 주는 것도 싫고요. 자살하는 것이 인정받지 못할 일이긴 하지만 이 사람이 얼마나 고통이 심했으면 저럴까 생각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손가락질만 하지 말고.”

폭이 넓기로 유명한 한강에 세워진 19개 다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살 다발 장소다.

 

사회적 수모와 갑갑한 현실을 견디지 못한 사회 고위급 인사가, 오명을 벗겨 달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던 만두제조업체 사장이, 사업실패로 생활고에 시달렸던 중년 가장이, 빈곤과 외로움에 치를 떨던 노인 여성이, 책가방과 신발을 나란히 벗어놓고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연인이, 심한 여드름을 비관하는 여학생이, 과도한 공부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한 수험생이, 삶의 목표와 희망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한강에 몸을 던졌다. 특히 한남대교는 유속이 빨라 한 번 떨어지면 살아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자살을 막기 위해 하루 종일 의경들이 순찰을 돌 정도다.

우리나라의 풍요로운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한강의 기적’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2,90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 평균 35.4명이다. 자살률은 OECD 평균보다 2배 이상 높고 2003년부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살을 개인의 ‘잘못된 선택’이나 ‘충동’으로 단정 짓는다. 왜 이들이 자살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여의나루 인근에서 소방대원과 경찰들이 출동해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인양 작업이 벌이지고 있는 현장을 기웃거리던 사람들은 “또 죽었네”라고 말했다. 가끔 들르는 한강 둔치에서 이런 광경을 목격하는 게 우연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이들은 또 “이렇게 살기 좋은 세상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찼다.

 

자살은 어떤 상황에서도 선택해서는 안 될 일이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어렵고 힘들 때 주위에서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생명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운명적으로, 종교적으로, 아니면 교육을 통해 자살을 금기시하고 있는 현대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는 거의 희박하다. 그럼에도 하루 평균 35.4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과 단절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만약 당신이 한강 교량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면 대화하라. SOS생명의전화에 전화를 걸어 가슴속 이야기를 꺼내 보라. 한강 교량에는 자살을 고민하거나 시도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긴급 상담 전화가 설치돼 있다. 365일 24시간 내내 연결되는 핫라인 SOS생명의전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