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개망나니의 사색

019. 모래밭을 거닐며 - 진심이 갖는 힘

이동권 2024. 3. 9. 20:44


운명은 내 안에 있다.

 


비조봉 정상에는 정결하고 소담스럽게 지은 팔각정이 있었다. 팔각정은 오래돼 보이지 않았지만 속세의 화려함과 찬란한 쾌락을 거절하고 자연과 벗하면서 맑고 깨끗한 생활을 영위했던 옛 도인들의 행보가 느껴졌다. 이곳에 올라 곡차를 마시는 그들을 상상해 보니 한층 더 애정이 깃들었다. 


정상에서는 선착장과 해수욕장, 해송산책로, 크고 작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정다운 시선으로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탁 트였고, 작은 풀잎 하나 저 수평선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은 변함없이 흐르고 산은 영원히 푸르지만 나는 언젠가 죽을 것이다. 그러나 슬퍼할 필요는 없었다. 그날이 올 때까지 내가 가야 할 길을 향해 달려가면 됐다.


멀리서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붉고 조용하게 타오르는 태양이었다. 뜨거운 대기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태양은 찬란한 흥분이자 심장을 소리 없이 갈라놓는 환희였다. 잡다한 일과를 계속 이어 나가는 것이 삶의 책무라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잠시 그대로 있고 싶었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도 태양을 바라보는 여유를 잃지 않아 다행이었다. 


작은 기쁨으로 삶을 만족하고 분배하다 보면 일상은 무작정 피로한 것이 아니라 강한 생기를 북돋아 주는 에너지가 됐다. 이를 테면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마음씨 좋은 사람과 만나고,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아이들을 관찰하는 기쁨은 생활에 활기를 줬다.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도 나에게는 아주 작은 기쁨이자 활력이 됐다.1)


바다는 거울처럼 조용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이나 바다 위를 날아가는 갈매기를 제외하고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무척 지루하고 밋밋했다. 하지만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다와 마주 서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반쯤 졸고 있는 바다를 끈질기게 바라보았다. 


신비로운 풍광에 넋이 빠진 것도 잠시, 최종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배가 오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재촉하다시피 산에서 내려왔다. 등산로는 비교적 단조롭고 편해 보였지만 그렇게 수월하지는 않았다.

 

숙소에서 짐을 챙겨 선착장으로 향했다.2)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나는 허기진 배를 칼칼한 바지락칼국수와 진한 커피로 달랬다.3)

 

아침 식사와 함께 즐기는 커피는 삶의 여유를 주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살기 위해 먹은 것인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습관적이고 인위적인 시간이었다. 의식적으로 이 시간을 즐겨보려고 했지만 애를 써도 되지 않았다. 

 

시간에 쫓겨서 그랬을까? 아니었다. 부두에 서서 바다를 가까이 보자마자 나는 순식간에 지쳐버렸다. 


휴식이 절실했다.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서 웃음도 많이 잃었다. 어둡게 드리운 그림자처럼 분노도 겹겹이었다.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몸도 떨었다. 이 나라가 과연 사람이 사는 곳인지 물어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모르고, 수줍고, 부끄럽고, 약하다는 이유로 바짓가랑이만 붙잡고 있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비극적인 일들을 외면하거나 무릎을 꿇는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미처 생각지 못한 작은 일에도 무너지고 말았다. 스스로 중심을 잃지 않고 의지를 지켜 나가면 피를 말리는 번뇌도 이겨낼 수 있었다. 


물론 의지는 자기 내부에서 나와야 하지만 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은 말짱 헛것이었다. 의식할 수 없는 원초적인 감정이나 본능에서 우러나야 의지는 힘을 가졌다. 마음과 다른 말과 행동은 어느 정도 진심을 감추면서 힘도 발휘할 수 있지만 진심이 갖는 힘을 절대로 따라갈 수 없었다. 


나는 기존의 체계나 관념, 도덕이나 정의에서 자유스러워지고 싶었다. 나를 속박하려 들지 않았고, 남들의 삶을 따라 살려고 하지 않았다. 내 진심의 힘을 위해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1) 내가 자연을 좋아해서 그런지 자연을 가까이했던 사람들과 친했다. 그들은 푸르고 의연한 소나무의 의기를 가지고 있었다. 번잡한 도시 생활에  환멸을 느꼈으며 안빈낙도를 삶의 근본으로 삼았다. 지금은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바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어딘가에 터를 잡았을 것이다. 보고 싶다.

 

2) 덕적도에는 해송이 아름다운 서포리해수욕장과 크고 작은 자갈이 해변에 펼쳐진 능동자갈마당, 조개를 캐는 체험이 가능한 북리갯벌, 능동자갈마당 건너편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 선미도가 있다. 덕적도 한가운데는 대나무 숲이 산행을 즐겁게 하는 비조봉이 있다. 


3) 해물 칼국수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 바다에 가면 왜 조개구이나 쭈꾸미, 막회, 생선구이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할까. 나는 이런 종류의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는 삼겹살과 소주였다. 주위 사람들의 호응은 나쁘지 않았다.

 



종교, 도덕, 철학, 윤리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의식적으로 올바르고, 선량하고, 어질고, 마땅한 언행을 가르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이나 인간 내면에 추악한 본색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물질의 굴레에 둘러싸여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볼 것을 권한다. 주위에는 정말 어렵고 괴로워하는 이웃들이 많다. 그들과 나누며 살지 못하는 것이 소유하지 못한 것보다 더욱 괴로운 일이다. 또한 부정과 불의에 희생당한 이들을 도울 용기도 우리에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