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삶에서도 웃음이 난다면 좋은 친구를 둔 탓이다.
섬을 관통하는 길을 따라 걸었다. 학교 운동장에는 젊은 남자가 조깅하고 있었다. 조금 더 걷자 잘 정비된 등산로가 나왔다. 일석이조였다. 바다와 함께 산이 나란히 있으니 꼭 친구 같았다.
나는 친구와 모든 것을 나누고 싶었다. 서로의 결점을 알았고 이해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따뜻하고 친근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함께 뭉치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
충고나 조언을 빌미 삼아 친구를 쉽게 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친하다는 이유로 불쾌한 얘기도 종종 건넸다. 물론 조언하지 않는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거기에는 타고난 성품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의미가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친한 척하는 친구와 진짜 친구를 판별하는 기준이었다.1)
내가 살면서 생긴 상처의 최고 치료약은 우정이었다.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우정이 깊어지는 것을 걱정하거나 거부할 필요가 없었다. 스스로 친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였고, 서로를 결속시키는 것은 이익과 이해관계가 아니라 사랑과 신뢰였다. 친구에게 이득을 얻을 생각을 한다면 애초에 버리는 것이 나았다.
삶은 야속하게도 친구와의 우정을 지키지 못하게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서로 삶의 지향이 달랐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보는 듯 보지 않는 듯 서로 관심을 쏟지 못하다 보니 이제는 옛 친구라고 말할 정도로 멀어졌다. 모두 내가 부족한 탓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나에게는 믿을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것이 여전히 소중했다. 그런 친구를 갖는 것은 다른 인생을 하나 더 갖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친구가 있고, 친구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급박하고 위험한 일을 겪게 되더라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고독에 응대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오롯이 홀로 인내하는 방법을 아는 현명한 친구가 드물었다. 가정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 처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친구가 될 수 없었고, 여자들도 대부분 남편의 친구들을 싫어했다.
귓가에 아침식사 소리가 공명처럼 울려 퍼졌다. 나무들은 열심히 수분을 끌어올려 새살을 채웠고, 산새들은 먹이를 찾아 바삐 자리를 옮겼다. 나는 낯선 곳에 가면 이질적인 풍경에 질식돼 쉽게 동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자연은 아무리 낯선 곳이라고 해도 거부감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놀랄 만한 풍경과 경험으로 더욱 깊은 감동과 기쁨을 선사했다.
벼가 자라고 있었다. 파와 마늘, 콩밭도 많았고 비닐하우스와 과실수도 상당했다. 물고기도 잡지만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리는 주민이 많은 것 같았다. 밭두렁을 걷는 주민의 발걸음은 활기찼다. 그 뒤를 따르는 백구의 몸짓도 경쾌했다. 곡식이 잘 여물어 풍년이 되길 바랐다.
성실한 농부와 충신한 견공의 절실한 마음이 통하는 곳은 역시 바다로부터 사방이 고립된 섬뿐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경험해 보면 도시 사람보다 섬 사람이 넉넉하고 인심이 좋았다. 불편한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작은 방에서 피곤한 몸을 눕히고, 울적한 시름을 달래는 방법은 막걸리뿐이지만 마음만은 부유했다. 섬 사람들은 하늘에 감사할 줄 알았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도 서로 나눌 줄 알았다. 혹독한 삶의 환경이 준 겸손함이었다. 그들은 사소한 일로 이웃과 부딪쳐 옥신각신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정겹기 그지없었다.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오직 이웃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도시는 섬과 극명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도시에서는 별의별 문제로 이웃 간에 다툼이 일어났다. 흡연. 층간소음. 애완동물. 쓰레기. 갈등의 원인은 소소해 보였지만 양상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위아래도 없었다. 성별도 없었다. 말싸움으로 시작하다 분이 풀리지 않으면 삿대질에 욕설, 상해로 이어졌다. 실제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 간에 다투다 흉기를 휘두른 일이 적잖게 뉴스에 오르내렸다.
옛날에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었다. 궂은일도 도맡아 해 주고, 반찬 하나라도 나눠 먹던 이웃사촌이 하루아침에 원수가 돼 눈에 불을 켜고 싸우는 일도 있었지만 어려울 때는 먼 친척보다 이웃이 낫다고 할 정도로 정을 나누고 살았다. 지금은 이웃사촌이라는 단어가 아예 사어가 된 것 같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까마득하다. 도시인들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산다.
이웃끼리 정을 붙이고 살면 외로움뿐만 아니라 힘겹고 어려운 일상까지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 그런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웃을 무시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언젠가 이웃은 가장 무서운 적이 되고 만다.
1) 배신은 친구에게 하는 가장 나쁜 종류의 폭력이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 한때 도움을 줬던 이들을 무참히 버리는 행동은 욕망에 저당 잡힌 노예 같은 삶이다.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직접 그런 배신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안타깝고 서글펐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스스로 돌아보길 바랄 뿐이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이라도 타인을 위해,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누가 알아주지 않고, 어떤 이익도 얻지 못하고, 목숨을 걸만큼 위험천만한 일이라도 결정할 수 있는가? 나는 개망나니여도 그것 하나만큼은 부끄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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