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개망나니의 사색

021. 다시 바다에서 -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이동권 2024. 3. 12. 12:39



음악은 삶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선물이다.



따사로운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는 잠잠했으나 하늘은 잿빛 구름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한바탕 요란을 떨며 비가 쏟아부을 것 같은 하늘이었다. 전신에 왠지 모를 스산함이 엄습했다.


하늘과 바다가 꿈틀거리며 용을 쓰는 시간이 머지않았다. 태풍이 심하면 비닐하우스가 빠지직 찢어지고, 나무들이 지끈하며 부러지고, 과일이 후드둑하며 떨어지고, 농작물이 툴러덩하며 쓰러지고, 어선이 털거덩하며 뒤집힌다. 산사태와 물난리로 수백 명의 수재민이 발생할 수 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만 힘들게 하는 태풍이다.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에게 여객선 직원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태풍이 오니 여행 일정을 잘 챙기세요."

 

기품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고마운 말이었다.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태풍 때문에 운항 중인 여객선이 좌초됐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태풍이 오면 배가 뜨지 않는 게 관례였다.

 

예상대로 바다는 아직 태평했다. 물결도 잔잔하고 부드러웠다. 산만했던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어깻죽지에서 힘이 쭉 빠지며  온몸이 자지러들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여유를 잊고 살았던가. 무채색 도시에서도 이런 류의 기분을 맛볼 수 있었겠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과 기회를 헛되이 낭비했다. 참으로 바보스러웠다. 


배는 뱃고동을 울리며 물안개를 뚫고 출발했다. 상큼하고 할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갑판에 우두커니 서서 멀어져 가는 섬을 바라보았다. 


배가 넓은 바다에 들어서자 방아 찧는 소리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바람이 생각보다 심하게 불어왔다. 태풍이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마음을 안정시킬 음악이 필요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음악은 평온했다. 나는 아련한 피아노 선율을 따라 손가락으로 갑판 난간을 튀겼다. 태풍에 대한 걱정도, 쓰디쓴 인생을 핥고 있는 내 자신도 잠시 잊고 음악에 빠져 들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불안을 느낄 때 종종 피아노 선율에 의지했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피아노가 내 마음을 꼭꼭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음악은 바다와 매우 잘 어울렸다. 프란츠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라는 곡이었다. 라 캄파넬라는 경쾌하지만 무겁고 진중한 느낌을 줬다. 라 캄파넬라의 뜻은 종소리였다. 하지만 그 소리가 맑아 땡강대며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1) 


음악은 첫 소절의 힘이 끝까지 이어졌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연주였다. 음악은 인간의 심상을 그대로 대변했다. 같은 음악도 연주자나 듣는 이의 마음 상태에 따라 소리가 달라졌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인간의 감성이 더욱 살아나고, 무더운 날에는 감성이 저절로 메말라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팔뚝질 하면서 부르는 노래도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이들의 마음 상태에 따라 힘차기도 했고, 기운 없이 축 처지기도 했다.


유쾌한 일조차 나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지 못할 때가 있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어리석고 장난스럽게 보여 상실감을 느끼기도 했고,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도 단지 감상에 머물러 마음이 황폐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것은 예술이었다. 그중에서도 음악은 나에게 진정한 휴식을 선사했다. 더 나은 안식을 찾으려고 할수록 음악에 대한 애착은 더욱 반짝였다. 생명의 소멸이 진행되는 대자연에서도, 갈등이 부딪치는 관계 속에서도, 숨 가쁘게 돌아가는 직장에서도 음악은 한결같은 여유를 제공했다. 


나는 몸 쓰는 일을 할 때마다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것을 좋아했다. 가열찬 현장일수록 음악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었다. 특히 힘을 북돋을 때는 음악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마음을 내놓을 공간도 생겼고, 싸울 힘도 얻었다. 물론 예민한 현장에서는 음악이 방해될 수 있었다. 그런 공간을 제외하고는 풍성한 음악이 곳곳에서 연주되길 바랐다. 의사들 중에는 수술을 할 때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음악이 심신을 안정시키기 때문이다.


서로 손가락질하고, 내 것과 네 것을 가리는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마음이 몹시 우울해졌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할퀴는 상처에 마모돼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게도 됐다. 그럴 때 음악은 치유제였다. 음악은 무엇에 관계없이 인생을 더욱 활기차고 정겹게 하는 묘약이었다. 나처럼 판에 박힌 일상을 보내는 사람일수록 음악을 들어야 했다. 


나는 음악소리조차 시끄럽게 들릴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가 드문드문 있었다. 그런 날에는 책을 읽었고, 그림을 보려고 전시장을 찾았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심중을 들여다봤고 그림을 보면서 화가의 의도를 꿰뚫어 봤다. 그렇게 삶을 사색하다 보면 나는 말로 하지 못할 안식과 마주할 수 있었다. 

 


1) 라 캄파넬라는 파가니니가 작곡한 바이올린협주곡 제2번 3악장이다. 이 곡은 연주하기가 어려워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악마의 곡으로 알려져 있다. 리스트는 파가니니에게 감명을 받고 이 음악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했다. 그 뒤로 이 곡은 더욱 유명해져 오늘날까지 연주되고 있다.

 



가끔 미치도록 음악을 듣고 싶을 때가 찾아왔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을 때였다. 음악이 현실을 살아가는데 연약한 감상을 선물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음악은 내면에 감춰진 아름다움과 감성을 찾는 친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