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개망나니의 사색

016. 모래밭을 거닐며 - 국화 같은 삶을 꿈꾸며

이동권 2024. 3. 9. 17:54


자신을 역할을 할 줄 안다면 사랑은 매우 쉬운 것이다.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다. 짐은 챙기지 않았다. 산책을 마치고 일찍 민박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완벽한 착오였다.


섬은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길목마다 들어서 정원을 방불케 했다. 길 따라 핀 붉은 야생화는 놀랍도록 이채로웠고, 이제 막 얼굴을 내민 국화는 내 마음을 흔들어 놓기 충분했다. 나는 시원하고 달디 단 국화 향기를 상상했다. 혼탁해진 가슴이 뻥 뚫리고 코끝이 후련해졌다. 


국화는 맑은 눈을 가진, 나이 든 사람을 닮았다. 깊은 숲 속 옹달샘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깨끗한 물처럼 인고와 지혜 같은 것이 국화에서 느껴졌다. 국화는 어떤 욕망에도 초연하고 경건한 기운으로 가득 차 보였다. 장례식장에서 장식용 꽃으로 국화를 사용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국화는 조약돌처럼 미끈한 촉감과 거센 들판의 깔깔한 이미지를 동시에 품었다. 날카로운 예지로 삶의 여로를 다듬어 가는 사람 같았다. 마음속에서 ‘나도 노년이 되면 저 들판에 핀 국화처럼 아름답게 물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국화는 불꽃같은 갈망을 잠재우며 목마른 영혼의 갈증을 씻어 줬다. 국화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간의 삶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특히 자비와 해탈이라는 불교의 세계관이 스며들어 있어 더욱 그래 보였다. 


나는 계절을 한 발 앞서 만끽하려고 여름에는 한대 설원으로, 겨울에는 열대 해변으로 눈을 돌렸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됐지만 유행 같은 분위기에 다분히 휩쓸렸다. 선민의식에 빠져서 돈도 좀 벌고 시간도 넉넉했던 내 삶을 자랑스러워했다.


여행의 양상은 내가 사는 공간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졌다. 떠나는 자의 마음이 어떠한지가 가장 중요했다. 남들을 따라 살고, 즐거움에만 취한 삶은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에서 얻는 이색적인 경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됐다.


부부로 보이는 노인이 옆을 지나갔다. 할머니의 몸이 좋지 않은지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두 노인을 보면서 국화꽃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식이 높고 가진 게 많아서가 아니었다. 두 노인은 행복의 비밀이 무엇인지 이미 아는 듯했다. 상대방을 향한 배려와 이해, 이타심이 바로 그 비밀이었다.


행복은 어쩌면 너무 쉬웠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면 됐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버리거나 상실하듯이 사랑하는 것을 진실한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그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괴로워했다. 그것은 뜨겁지만 온전한 사랑은 아니었다.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사랑의 뿌리라는 것을 모르는 철부지의 애증에 불과했다. 

 

나는 너무도 아등바등 다투며 살았다. 항상 일상 밖에서 파랑새를 찾았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서로를 깎아내리고 잡아먹지 못해 조바심을 부렸다. 조금이라도 손해 보기 싫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행복은 저만치고, 사는 게 행복하지 않다는 푸념만 가득했다. 


노부부의 모습은 물질에 대한 우리 사회의 굴레, 그것을 알면서도 물질을 찾아 헤매는 ‘야성의 인간상’과 대비됐다. 노부부는 자신의 영혼이 죽어가는 줄도 모르면서 물질에 대한 해갈만 원하는 세상의 비정함과 초라함을 유쾌하게 비웃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살고 있느냐.’고 대놓고 묻는 것 같았다. 


세상엔 눈을 찔끔 감게 만드는 사건들이 많았다. 사기 치고, 해코지하고, 폭행하는 사건. 심지어 존속 간의 살인 사건도 빈번했다. 노부부의 뒷모습은 이런 세상을 향해 눈물 흘리는 ‘깊은 슬픔’이었다.


부부, 형제자매, 친구, 사제, 선후배, 직장 동료, 이웃 등 모든 인간관계가 항상 좋을 리 없다. 그럼에도 참고 인내하는 것이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갈등도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커지는 것이었다. 사랑을 하면 고통스러울 일도 없고, 절교, 별거, 파혼 같은 단어도 무용지물이었다. 이해하고 감싸주고 도우면 될 일이었다. 이제는 그것을 알고 있다. 모든 앙금은 조금 더 내가 더 사랑하지 못해 벌어진 사단이었다.


사랑은 소통이다. 서로를 식별하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려는 존엄한 몸짓이다. 처음부터 모든 게 원만할 수 없다. 서로 노력하고, 익숙해지고, 반복하면서 서로를 삶의 중대한 대상으로 인식하면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을 지켜나가면 된다. 


나는 너무나 일회적이고 이기적인 견해에 사로잡혀 살았다. 지금이라도 긴장을 놓고 사랑하며 살길 바랄 뿐이다. 그렇다고 순교자나 청교도적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며, 그렇게 살 이유도 없다. 검소하고 절제하며 엄숙한 생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훌륭하지만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탈이 안 난다. 나는 개망나니다.


1) 국화는 동양의 관상식물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사군자의 하나로 귀히 여겨졌다. 국화는 여러 해를 살며, 노란색, 흰색, 빨간색, 보라색 등 다양한 품종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숭엄한 꽃은 하얀 국화다. 조계사에서는 매년 가을 국화축제를 펼친다. 고매한 국화가 지면 겨울이 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국화에는 오롯한 성찰로 한 해를 마무리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하자는 부처의 말씀과 닿은 꽃이다.


 

내가 삶에서 느낀 최고의 행복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한 인지였다. 복음성가 중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전 국민적인 히트를 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솔직하다고 말했다. 내 마음을 감추고 싶지도 않았지만 상대방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