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권의 잔인한 공안 통치는 서울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노 정권은 ‘민생치안에 관한 특별지시’를 통해 법집행을 소홀하게 대하는 공직자를 엄벌하고, 소신껏 일하다가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는 정상참작을 하겠다며 폭력을 부추겼다.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학원에서 벌어지는 위법행위와 무질서를 바로잡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경찰의 폭력이 정당한 공권력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계속해서 노 정권은 1989년 10월 4일,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규탄하는 국민대회가 열린 날,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경은 ‘대 범죄전쟁 선포에 따른 실천계획’이라는 후속조처를 발표하고 폭력의 수위를 한 차원 높일 것을 일선경찰에 지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경찰서가 기습을 당하면 과감한 무기를 사용해 제압하고, 점거시위는 포위진압, 거리시위는 원천봉쇄하기로 원칙을 세웠다.
특히 화염병을 던진 학생은 학교 안까지라도 쫓아가 최대한 검거하라는 내용도 담겨져 있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의 시위를 조직 범죄와 동일하게 다루겠다는 초강경 대처방안이었다. 이에 대해 법조계 등에서는 학생들에게 일반 형법을 적용하는 것은 자의적 법적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경찰의 자세는 요지부동이었다.
이때부터 경찰의 ‘공격적인 진압’은 ‘검거 위주의 포위작전’으로 변했고, 경찰의 폭력은 면죄부라도 받은 것처럼 더욱 악랄해졌다. 그리고 크고 작은 시위현장에 ‘백골단’이라는 사복체포조가 등장했다. 이들은 청바지와 청재킷을 입고 불량한 모습으로 거리에 서 있다가 학생들이 데모하면 재빠르게 쫓아가 무자비하게 두들겨 팬 뒤 잡아갔다.
시위가 거세질수록 백골단의 수는 점점 늘었다. 덩달아 폭력의 수위도 높아졌고, 가끔은 진압전경 없이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할 정도로 난폭해졌다.
시위를 진압하는 방식이 변화하는 추이를 보면 폭력의 수위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더욱 실감난다.
기존에는 3단계, 즉 시위 주동자 체포, 시위대 해산, 재집결 방지 단계로 나눠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이 선포된 뒤에는 사전 단계 없이 ‘시위자 전원 검거’로 바뀌었다. 자진 해산을 유도하는 ‘선무방송’을 하고 진압병력을 전진 배치한 뒤 최루탄을 집중 사격하면 백골단이 시위대로 진격해 폭력을 휘두르고 검거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경대가 사고를 당하기 한 달 전에는 ‘일보전진’, ‘일보후퇴’를 반복하던 진압 전술이 후퇴 개념을 없앤 ‘전진공격’으로 바뀌었고, 시위자에 대한 신체가격방식과 범위도 신체 대부분을 적극적으로 가격할 수 있게 바뀌어 ‘신형봉술’이 도입됐다. 이를 위해서 개인 진압봉 이외에 별도로 제작된 110cm 길이의 대형 죽도가 백골단에 지급됐다.
게다가 체포 방식도 기존의 ‘소매잡기’가 아니라 ‘손목꺾기’, ‘양팔잡기’, ‘양어깨 누르기’ 등 신체에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변했다. 방어목적으로 쓰였던 방패도 ‘밀면서 쳐’ 등의 동작이 추가돼 공격적인 무기로 바뀌었고, 별도로 백골단에게는 시위대에 접근해서 격투를 벌일 수 있는 소형 방패가 지급됐다.
이런 상황에서 경대가 처참하게 맞아 죽은 사건은 우연이 아니었다. ‘공격적인 시위진압’, ‘시위자는 전원 추적해서 검거한다’는 지침 아래 경대의 생명은 추풍낙엽과 같은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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