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강경대 평전

045. 정치투쟁으로 점화된 대중투쟁

이동권 2021. 11. 22. 13:37

 

1987년 6월 항쟁 이후, 군부독재가 무너지면서 오랫동안 지하에서 억눌려 있던 기층 민중이 자신들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대대적인 투쟁을 전개했다. 또 예술계, 학계 등 각계각층이 전국 조직으로 확대되면서 대중적 운동역량이 크게 확대됐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과 사사건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대중투쟁은 정치투쟁으로 전이,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정치투쟁의 선봉에 선 것은 노동자 계급이었다. 노동자들은 KBS투쟁을 필두로 현대중공업노동자들의 골리앗 크레인 농성, 울산 전역에서 벌어진 거리 시위, 전국 51개 노동조합의 투쟁, 10만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거리 시위 등 노동자 정치총파업 투쟁을 연이어 전개했고,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인천지역노조협의회,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등 다양한 조직을 결성했다.


농민운동의 경우도 비슷했다. 농민들은 전국농민단체협의회(전농협), 전국농민운동연합(전농련), 전국여성농민위원회 등의 조직을 결성하고 ‘농축산물 수입개방 저지 및 제값받기 전국농민대회’, ‘농협중앙회 점거 투쟁’, ‘쌀값보장 전국농민대회’ 등을 잇따라 전개했다.


학계에서는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를 창립해 ‘사회와 대학의 민주화’, ‘학문과 사상과 출판의 자유’, ‘제반 악법 개정’ 등을 과제로 활동했다. 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 등을 결성해 각자 목적에 맞는 교육, 실천, 비판 활동을 벌이며, 대중투쟁을 전개했다.


청년운동은 1988년 1월 창립한 전국청년단체 대표자회의에서 연합조직을 만들기로 하고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전남민청, 부산민청, 충남민청에서 준비소위를 구성했으며, 여기에 나라사랑청년회와 인천민주청년회가 새롭게 참여하면서 14개 참가단체와 3개 참관단체가 모여 전국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전청협)를 발족했다. 전청협은 ‘5·18광주순례’와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 투쟁’ 등을 전개했다. 


빈민운동은 노점상과 철거민이 함께 연대하면서 투쟁을 전개했다. 빈민이 주체가 된 최초 조직 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와 도시노점상연합회를 포함한 전국노점상연합회(전노련)가 출범하면서 도시빈민운동은 연대 체제로 싸우기 시작했다. 또 종교를 기반으로 한 빈민단체와 서철협, 전노련 등이 결합해 도시빈민공동추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제5·6공화국 재개발 비리만행 폭로 규탄 및 깡패철거 결사저지대회’를 개최했으며, 이후 1989년 11월 전국빈민연합을 결성했다.


문화운동은 1988년 12월 문학, 연극, 미술, 음악, 춤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이 민중의 삶에 기초한 현장예술, 민족민주운동, 통일조국건설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를 창립하고, 민족민중예술의 대중화와 민중문화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전 부문에 걸친 대중투쟁이 정치투쟁으로 점화되자 노 정권은 혹독한 공안정국을 조성해 운동의 상층부와 대중운동의 토대를 붕괴시키려고 했다. 노태우 정권에 직접적인 위협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세력은 지도력 부족으로, 전국적 대중투쟁을 ‘변절한 보수야당에 대한 응징’과 ‘노태우 정권 타도 투쟁’으로 확대, 발전시키지 못했다. 또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는 데에도 힘을 결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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