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경대 가족은 산산조각이 났다.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구속되고, 집에는 어머니와 딸, 둘만 남았다.
덕수궁 옆 서부지원에서 경대를 죽인 백골단들의 마지막 재판이 열리던 8월 6일에는 삶에 대한 최소한의 희망마저도 무너졌다. 법원에서 유족들에게마저 방청권을 주지 않은 데다 ‘방청안내문’ 어디에도 ‘강경대’라는 이름조차 공지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선미는 유가협 회원들과 함께 방청권을 달라고 항의했지만 법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 재판은 피해자 측의 증인도, 방청객도 없이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선미는 식음을 전폐하기에 이르렀다. 정신력, 면역력이 약해지고 몸에 진이 다 빠지면서 결핵이 찾아왔다. 원래부터 건강한 체질이 아닌데다 먹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는 통에 병이 들었다. 어머니는 자신도 제정신이 아니어서 딸이 뭘 먹고, 어떻게 자는지 자상하게 챙기지 못해 병을 키워버렸다.
선미는 그저 감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회복되지 않고 점점 나빠지자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선미는 경대를 검안했던 성수병원의 양길승 원장을 찾아갔다. 양 원장은 선미의 몸을 살펴본 뒤 나중에 꼭 어머니와 함께 오기를 청했다. 선미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건강도 좋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미는 어머니에게 건강진단을 받으러오라는 양 원장의 얘기를 전했다. 그러나 자신의 결핵 얘기는 숨겼다. 경대 때문에 몹시 지쳐있던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다.
양 원장은 어머니의 엑스레이 필름을 유심히 살피면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어머니는 결핵이 왔다갔다 하고 선미는 약을 복용해서 치료를 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결핵에 걸려 죽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또 결핵에 걸려 고생하던 옆집 아주머니가 갑자기 생각나 걱정부터 앞섰다. 그래서 선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광주 망월동에 다니는 일 때문에 집에서 음식을 직접 해먹이지 못하고 대부분 밖에 나가서 사 먹였다. 어머니는 그저 이렇게라도 먹고살 수 있는 것에 감지덕지하면서 슬픔을 삼켰다.
경대가 죽고 선미까지 결핵에 걸리자 어머니는 삶에 대한 원망이 커졌고, 남편을 책망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그래서 남편이 감옥에서 나온다는 소식에도 기쁜 마음보다 오히려 슬픔이 복받쳤다.
하지만 이면에는 가장 살갑고 믿는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자신의 슬픔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슬픔을 나누고픈 심정 말이다. 더구나 원망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다 부질없는 질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지 싸워서 경대의 억울한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머니는 한때 경대를 앗아간 세상에 대해서도 원망했다. 모든 행복이 갈기갈기 찢어져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고,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닥쳐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좋지 않은 것은 빨리 잊고, 좋지 않은 말은 흘려버렸다. 옳은 것을 고집한 적은 많아도 부질없는 것을 고집하지는 않은 성격이었다.
“남편은 아무런 잘못이 없어. 세상을 원망해서 뭐해. 원흉은 노태우 정권이지.”
선미는 독한 결핵약 때문에 몸의 균형이 깨졌다. 대소변도 약 색깔 그대로 나왔고, 살도 쭉 빠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선미는 일 년 정도 치료를 받은 뒤 완치돼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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