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강경대 평전

040. 선미의 외출

이동권 2021. 11. 17. 16:30

선미와 어머니

 

선미는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불안해하고, 힘겨워하는 동료들을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후에는 대학에서 근무하면서 학생들을 상담하고 봉사 활동에 매진했다. 자신보다는 타인을 생각하며 살았던 부모님의 생활에서 배운 그대로였다. 선미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딸로서의 역할보다 동아리, 학생회, 농활 등에 자신을 쏟아부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만약 경대가 죽지 않았다면 선미는 아마도 심리학자가 아니라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일을 하는 예술인이 됐을 것이다. 


선미는 인간문화재 선생님들도 칭찬할 정도로 꽹과리를 잘 쳤다. 장단을 들으면 곧바로 칠 수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음악 지식도 해박했다. 특히 전통문화에 깃든 신명을 좋아했다. 사물놀이를 하면 신이 났고, 이것만큼 즐거움을 주는 유희는 없었다. 하지만 경대를 보낸 후엔 그 신명이 사라져 몇 년 동안은 장구채도 잡지 않았다.


선미는 공부를 마치고 늦은 나이에 결혼식을 올렸다. 모두가 축하할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딸의 결혼이 그렇게 달갑지 않았다. ‘결혼하면 딸이 나가 살텐데 어찌 보내나’ 아까웠고,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경대 사업을 같이 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선미 역시 결혼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선미는 경대가 없는 집안의 빈자리를 남편 될 사람이 채워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식을 올렸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어머니는 지금도 경대 이름이 입가에 맴돈다. 그 어디에선가 경대가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신다. 또 선미가 낳은 아이들이 꼭 경대인 것만 같아 다시 보고 또 쳐다본다. 경대의 영혼이 아이들에게 깃들어 있는 듯해서다. 이제 부모님은 손자 손녀가 잘 크는 것이 제일 큰 낙이다. 특별한 바람도 없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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