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강경대 평전

035. 잔인한 계절

이동권 2021. 11. 17. 16:01

故 강경대 1주기 추모식에서 단상에 오른 어머니와 선미

 

어머니는 경대를 잃은 지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는 대문을 열자마자 슬픈 목소리로 경대를 불렀다. 단 한 번도 경대가 집에 없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어딘가에서 활짝 웃으며 나타나 꼭 안아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경대는 온데간데없고 뜻밖의 상황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목걸이, 팔찌 할 것 없이 돈이 된다 싶은 것은 모두 도둑을 맞았다. 그 당시에는 흔하게 사용하지 않았던 신용카드도 사라졌다. 카드를 쓰는 게 낯설어서 장롱 서랍에 넣어 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중에 명세서를 보고서야 카드를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신용카드 대금을 내지 않았다. 자신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딱히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단지 경대가 죽은 뒤 신용카드를 사용할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명세서에는 경대가 사고를 당한 26일부터 사흘 동안 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돼있었다. 그럼에도 은행은 다짜고짜 돈을 갚으라고 계속 독촉했다. 


어머니는 통장에 있는 돈을 모두 찾고 수사를 의뢰했다. 그 돈은 내줄 수 없다고 버텼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재산이 모두 넘어가더라도 비정한 우리 사회의 두 얼굴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사건은 5년에 걸친 공방 끝에 대금 지불을 하지 않는 것으로 종결됐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아들의 죽음을 위로해주지는 못할망정 도둑질을 하는 이 세상이 너무나 비천하고 천박해 보여 울적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도둑맞은 것 중에는 경대의 소지품도 있었다. 일기장, 학생증, 주민등록증뿐만 아니라 심지어 졸업장, 졸업앨범, 상장, 사진앨범까지 모두 사라졌다. 


어머니는 정황상 경찰이 아니면 기자가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경찰들을 다그쳤다.


“잃어버린 재물은 나중에 찾아줘도 되니까 경대 물건부터 찾아주세요. 그것이 더 급해요.”
“경대 어머니. 경대 물품은 기자들이 취재 목적으로 가져간 것 같아요.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찰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수사를 하는 건지, 하지 않는 건지 친척들만 괜스레 불러 조사했다. 


선미는 경대의 유품이 사라진 것을 보고 울분을 참지 못했다. 아무리 수사나 취재가 목적이라고 하지만 가족들의 동의 없이 온 집안을 뒤져 경대의 유품을 함부로 가져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선미는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을 잃어버린 것도 원통한데 경대의 유품이 될만한 물건까지 도난당하자 눈물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치 어린 나이에 이 세상을 모두 살아버린 느낌마저 들었다.


유족들은 노태우 정권의 잦은 감시와 폭력에 시달렸다. 전화 도청은 기본이었다. 가는 곳마다 검문을 당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검문에 항의하면 욕설을 퍼부으며 구타했다. 그럼에도 언론은 ‘강경대 부모가 형사와 실랑이하다 싸움이 벌어졌다’고 왜곡 보도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집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TV에서 아버지의 체포영장이 떨어졌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어머니는 경대를 잃고 난 뒤 다시 찾아든 노태우 정권의 전방위적인 탄압 앞에 치를 떨어야 했다. 


경대가 없는 어머니의 삶은 슬픔 그 자체였다. 한시도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먼지 한 올도 놓치지 않고 경대 방을 깨끗이 청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움이 복받쳐 오를 때는 경대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울거나 경대가 쓰던 의자에 앉아 소리 없이 흐느꼈고, 경대가 입던 옷을 꺼내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며 입술을 깨물었다. 밤에는 경대가 덮던 이불을 펴놓고 경대가 오기만을 목 놓아 기다리다 홀로 잠을 청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도 경대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식탁에 올렸다. 항상 건너편에 앉아서 밥을 먹던 경대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경대는 돌아올 수 없는 몸. 어머니는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 넣으면 목이 메어와 물부터 찾았다. 


무엇이든 잘 먹던 경대가 없으니 음식도 남아돌아 곰팡이가 피었다.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차디찬 밥이 꼭 쓰러진 경대 같아 어머니와 선미는 서로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울다 지쳐 잠이 들면 또 경대가 꿈속에서 아른거려 악을 쓰며 잠에서 깼다.


어머니는 만날 차를 타고 광주 망월동 묘역에 가서 경대 사진을 끌어안고 울었다. 아니 광주에서 살다시피 했다. 집에 있으면 협박 전화가 빗발쳐서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또 도장 하나, 싸인 하나만 하면 남편이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회유도 견뎌내기 힘들었다. 


어머니는 어떠한 회유와 협박에도 입술을 굳게 깨물며 떳떳이 맞섰다. 땅에 묻은 자식을 떠올리면서, 감옥에 가는 남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아들의 뜻을 훼손할 수는 없었다. 


“감옥에서 자살하지 않은 이상 죽어나오는 사람은 없다. 내 목에 칼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절대로 응하지 않겠다.”


어머니는 경대 기념관으로 쓸 집을 장만할 때도 제값을 주고 샀다. 깎고 흥정하는 것이 세상사라지만 경대의 이름에 세상사의 저울질이 섞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따뜻하고, 사람들이 찾기 쉽고. 번잡스럽지 않은 곳이면 충분했다.

 

1992년 5·18광주항쟁 기념식에 참가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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