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강경대 평전

032. 망월동에서 잠들다

이동권 2021. 11. 15. 16:49

거리에 쏟아져 나온 학생들과 시민들

 

광주 도청 앞에서 노제를 마치고 8km가 넘는 거리를 행진한 시민들은 새벽 3시경 망월동 묘역에 도착했다. 모두들 환희와 슬픔이 교차된 얼굴이었다. 이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광주출정가’, ‘농민가’, ‘아침이슬’ 등을 합창하며, 간간이 구호를 외쳤다. 


“광주 시민 일어섰다. 노태우 정권 퇴진하라.” 
“망월동은 통곡한다. 미국 놈들 물러가라.”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강경대 열사의 하관식이 엄숙하게 거행됐다. 대형 태극기가 덮인 관이 동료 학우들에 의해 무덤으로 옮겨지자 묘역을 가득메운 1만여 명의 추모객들이 침통한 목소리로 아리랑을 합창했다. 유가족들은 입술을 깨물며 경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다 끝내 어머니는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오열했다.


“경대야 갈래. 어미만 남겨놓고 정말로 갈래. …….” 


어머니의 목메인 울부짖음을 지켜본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고, 하관식은 그야말로 눈물바다가 됐다.


이어서 문익환 목사의 추도 속에 관 위로 흙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경대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삶을 떠나보냈다. 


“우리는 오늘 또 한 명의 아들꽃 경대를 차가운 흙속으로 돌려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경대는 오늘 죽었어도 죽지 않았습니다. 경대의 육신은 비록 땅에 묻혔지만 그의 뜻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민주와 통일의 횃불로 영원히 부활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 이 땅의 민주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광주항쟁 때 죽어간 선열들의 도움을 받아, 독재의 쇠파이프 아래 숨져간 강경대 열사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는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이룩하고야 말 것입니다. …….”


경대의 시신은 새벽 4시, 광주 망월동 묘역에 안장됐다. 그 옆에는 경대의 죽음을 애도하며 가장 먼저 분신하고, 이날의 투쟁을 승리하도록 이끌어준 박승희 열사가 안장됐다. 


경대 가족은 이날 이후 유가협(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에 가입했다. 부모님들은 경대와 같은 선배 열사의 사진을 보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피 흘리며 쓰러졌다는 것을 알게 됐고, 경대가 하늘나라에 가서도 열사 선배들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생각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장례식을 마치고 명지대로 돌아온 학생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 측에서 만장을 비롯해 경대와 관련된 모든 물건을 다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업이 재개되면서 시위에 참가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 사이에서 갈등도 심화됐다. 이 문제는 모든 학년, 모든 과에서 일어났으며, 서로 막말도 오고 갔다.


“투쟁하는 동안 너는 어디에 가 있었냐. 너만 살겠다고 공부할 수가 있느냐.”


교수들의 헛소리 때문에 문제가 되기도 했다. 1학년짜리가 뭘 알겠느냐는 식의 깎아내림이었다. 그래서 교수와 학생이 서로 언쟁이 붙어 수업 분위기가 사나워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돈 문제도 있었다. 장례비용을 학교에서 받지 못해 학생회가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학생회는 학교와 장례비용 문제 등을 합의한 뒤 장례 절차를 마무리했다. 5월 투쟁도 서서히 동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망월동 묘역에 모인 사람들
망월동 묘지에 안장되는 강경대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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