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대가 죽은 다음날부터 영안실에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아버지의 동창생이라고 찾아왔다. 민자당에 있는 높은 사람이라며 찾아오는 이도 있었다. 다름 아닌 노태우 정권의 끄나풀들이었다.
그들은 아버지를 보자마자 너스레를 떨었다.
“어, 자네하고 동창이야. 그런데 말이야. 경대는 갔지만 자네라도 살아야 될 것 아닌가. 다른 사람은 5억짜린데, 경대는 20억을 줄 테니 장례를 치르고 합의함세.”
아버지는 모르는 척했다. 뺨이라도 때려야 분이 풀리겠지만, 그럴만한 경황이 없었다. 아버지는 마른 침을 삼키면서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말고, 경대 엄마 알면 큰일나니까 저리 가시오.”
아버지는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들과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억울하게 죽은 자식을 팔아서 자기 살 길을 찾으려는 비정한 부모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돈’이면 다 되는 것처럼 몰상식한 태도로 일관했다. 나중에는 금액을 올려 50억까지 제시했다. 아버지는 기가 막혀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힘찬 목소리로 대들 듯이 말했다.
“그러면 내가 당신들 의견 다 들어줄 테니까 내 의견도 들어줘라. 10원짜리 한 개도 남기지 않고 내 재산을 모두 줄 테니까 노태우한테 자식 한 명만 팔라고 해. 어서.”
노태우 정권은 유가족 앞에서는 갖가지 방법으로 회유했지만 뒤에서는 공격할만한 건더기를 찾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
세무서에서 일하는 경대 사촌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 세무감사가 들어갈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며칠 뒤 예정된 수순처럼 세무 감사가 들어왔다. 걱정이 된 사촌 형이 몰래 상황을 알아보고 전화를 해준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거리낄 게 없었다. 평소 건실하고 깨끗하게 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에 꼬투리를 잡힐만한 게 없었다.
그들은 예전에 아버지가 살았던 곳까지 찾아가서 뒷조사를 했다. 조금이라도 흠이 되는 것을 찾아 도덕성을 걸고넘어지면서 경대의 죽음을 희석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특별한 점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자 나중에는 ‘조선일보’가 나서 있는 사실, 없는 사실을 다 붙여서 아버지를 노름꾼으로 몰았다.
아버지는 5월 4일 연세대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서 이 사실을 소상히 밝혔다. ‘돈’과 ‘폭력’으로 정세를 역전시키려는 노태우 정권의 간악한 작태를 낱낱이 고발했다.
“여러분, 돈을 받아 챙길까요?”
“아니오.”
10만 군중은 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아무리 회유해도 넘어갈 사람이 아닙니다. 권력으로 짓누르려고 해도 안 될 것입니다. 스포츠맨은 강합니다. 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회유와 협박이 계속되면서 아버지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의문사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충분히 그럴만한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경대처럼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생각 끝에 유서 13장을 써서 적들이 찾아 없애지 못하도록 여러 군데 숨겨놓았다.
유서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노태우 군사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끝까지 싸울 테니까, 내가 변사체로 발견되면 정부에서 죽인 것으로 알아라. 나는 절대로 자살하지 않는다.’
어머니도 갖가지 회유와 협박에 시달렸다.
어머니가 광주에서 식당을 운영할 때였다. 형사 세 명이 붙어서 어머니의 신경을 살살 건들었다. 어머니는 경찰 옷만 봐도 치가 떨렸지만 좋게 타일렀다. 그러나 경찰들은 날마다 찾아와 식당 앞에서 서성거렸다.
어머니는 참을 수 없었다.
“당신들 우리 경대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잘 들어. 한 번만 더 얼쩡거리면 이 칼로 쑤셔버릴 거야. 고기 자르는 칼이 얼마나 잘 드는 줄 알지. 절대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어머니의 모습은 사람이 아니었다. 눈이 뒤집어지고, 분노가 심장을 찌르는 고통으로 온몸이 떨렸다. 그래도 경찰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참다 못해 경찰들에게 달려들면서 호통을 쳤다.
“정말 내가 못할 것 같아. 나 경대 엄마야. 내가 너 죽인 다음에 나 죽을 거야.”
경찰들은 어머니의 기에 눌려 더 이상 식당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고, 수배 중인 학생들이 들어와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다.
노태우 정권은 어머니를 매수하기 위해 간간이 누군가를 보냈다.
한 여자가 식당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5·18 유가족이라고 소개한 뒤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사정이 닿는 대로 살지 무리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기 싫어했고, 그저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능력껏 주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고마운 마음에 그녀에게 아침까지 대접하면서 말했다.
“제가 하는 일은 모두 경대 뜻이에요. 힘들어도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아요. 서울에 가면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 사람들을 도우세요. 대신 경대가 보고 싶은데 망월동에나 같이 가줘요.”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이상한 말을 했다.
“경대에게 가는데 꽃은 사가지고 가야죠.”
“꽃이요?”
어머니는 의심이 갔다. ‘너는 진짜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5·18 유족이라면 망월동 묘역 입구에 있는 꽃가게를 모를 리 없었다.
어머니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그녀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봤다. 하지만 그녀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서 “약속이 있다.”며 급하게 도망 가버렸다.
어머니는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경대의 몫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경대를 빼놓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조그마한 기부를 할 때도 항상 경대의 명의로 하며, 아무리 작은 일에도 꼭 ‘강경대’ 이름 석 자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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