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초소를 지나 - 전신의 피가 말라가는 듯
장준하 일행을 돕기 위해 중국인 세 명이 붙었다. 장터로 가는 날 이들이 일행 앞뒤에 서서 도움을 주기로 했다. 안내원의 인복 덕분이었다. 안내원은 마을 주민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는 일본군이나 팔로군과 분쟁이 있을 때마다 기꺼이 나서서 까다로운 문제들을 일일이 해결해 왔다.
일행은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중국인 농부 옷을 입고 구럭 망태를 걸머졌다. 똥자루를 어깨에 메거나 갖가지 보따리도 쥐었다. 일행이 한꺼번에 발각되는 일이 없도록 다섯 명 사이에는 중국인들이 섞였다. 만약 한 명이 잡히더라도 네 명은 살아서 충칭으로 가야 했다. 그것이 동지를 위한 일이었고, 조국을 위한 일이었다. 일행은 장꾼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시간에 철도를 건너기로 했다. 그 틈에 섞여 가야 감시의 눈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또 중국말을 못 하는 장준하 일행에게는 청각장애인 행세를 하고, 중국어를 잘하는 김준엽에게는 적당히 대처하라고 일렀다.
결전의 시간이 왔다. 장준하 일행은 중국인 장꾼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얼굴에 웃음기를 쫙 빼고, 눈동자를 가운데에 두고, 뚜벅뚜벅 발을 내디뎠다. 장준하는 일이 잘못되면 모두 총살감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뜻밖의 사고로 원대한 꿈이 좌절될 수 있었기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초소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초초했다. 불안한 나머지 등과 가슴에 비 오듯이 땀방울이 맺혔다. 빨리 걷고 싶어 조바심도 일었다. 참아야 했다. 이상한 기색을 내보이지 말고 느긋이 걸어야 했다. 자신이 어색해하면 일본군에게도 어색하게 보였다.
초소가 눈앞에 들어왔다. 십 보만 내딛으면 첫 번째 관문은 무사통과였다. 장준하는 등골에서부터 피가 바싹바싹 말라왔다. 입술은 탔고 혓바닥에는 침이 말랐다.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소리가 밖으로 들리는 것 같아 노심초사했다. 장준하 일행이 초소를 지나가자 일본군이 매의 눈으로 행렬을 훑었다. 장준하는 욱신욱신 뒷골이 쑤시며 자꾸 발걸음이 빨라지려고 했다. 그때 옆에 섰던 중국인이 장준하의 보따리를 들어주는 척하며 그의 손을 꼭 쥐었다. 장준하는 중국인의 따뜻한 온기에 긴장감이 쓰윽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악몽 같은 순간과 작별했다. 그러나 초소를 지나자마자 일본군이 호각을 불며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 신경을 너무 많이 써 들리는 환청이었다.
자주의 횃불을 높이 들고 - 우리는 왜 걸어야 하나
장준하 일행은 불상사 없이 일본군 초소를 건넜다. 생기 없는 얼굴에 핏기가 돌며 웃음이 저절로 났다. 도전 없는 성공은 없었다. 어려운 도전을 감행하지 않으면 성공이라는 참맛을 알지 못했다. 일행은 안내인과 중국인들이 너무 고마워 연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중국인 세 명은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별다른 반응 없이 작별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조국을 배반하고 적국에 빌붙어 사는 사람이었다면 일행에게 뭔가 대가를 바랐을지 몰랐다.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을 결코 용인하지 않았다. 일본은 그들에게 적국이었고, 한국은 적국에게 독립하기 위해 싸우는 나라였다.
일본군 관할지역에서 벗어나려면 60리만 걸으면 됐다. 오늘 안에 60리를 걷는 건 무리였지만 일본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 마음이 앞섰다. 장준하 일행은 장터에서 안내원과 친분이 있는 주막에 들러 국밥으로 시장기를 달랬다. 중국인 농민으로 위장하기 위해 가져온 물건들도 죄다 맡기고 다음 여정을 재촉했다.
눈앞에 휘넓은 만주 벌판이 펼쳐졌다. 황막한 벌판엔 나무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흙바람이 간간이 소용돌이치며 적막함을 더했다. 장준하 일행은 아무 말도 없이 줄지어 걸었다. 걷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토박한 벌판을 내디뎠다.
장준하는 자신과 대화를 나눴다. 자신이 왜 충칭으로 가는지 그 의미를 물었고, 그 답을 얻어 6천리 대장정의 힘을 얻으려고 했다. 걷는데 이골이 나고, 뙤약볕과 삭풍에 단련된 몸이라 해도 바람처럼, 강물처럼 6천리를 쉬지 않고 걷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도처에는 사건, 사고의 위험이 도사렸고,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답은 아주 쉽게 나왔다. 장준하가 충칭에 가려는 이유는 일제의 총칼에 결박된 조국을 독립시키는데 힘이 되자는 것이었다. 자주의 횃불을 높이 들고 일제에 항거해 후손들에게 해방된 땅을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도움이 피라미처럼 미미하고, 그 대가가 차디찬 감옥에 감금되거나 목숨을 잃는 것이더라도 조국 독립을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나라 잃은 설움 - 또 다른 사령부의 모욕적인 태도
장준하 일행은 태양이 지글지글 타오르는 벌판을 닷새 동안 걸어 다음 유격대의 사령부에 도착했다. 첫 번째 안내원은 목마름과 배고픔 없이 일행을 편안하게 이동하도록 도왔다. 야트막한 구릉지에 조성된 원두막에서 수박을 사 먹였고, 시골 마을 헛간을 빌려 밤사이에 잠도 재웠다. 특히 번쩍이는 포화와 숨 쉴 틈 없이 쫓기는 추격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만으로도 순편했다.
참을 수 없는 수모는 다음 유격대에 인계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첫 번째 안내원은 다음 유격대에 장준하 일행을 인계한 뒤 안내를 부탁하고 떠났다. 일행은 그와 헤어지는 게 안타까웠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반드시 찾아오는 법이었다.
두 번째 만난 유격대는 장준하 일행을 개 보듯 대했다. 바로 앞에서 눈을 내리깔며 얕잡아 봤다. 사령관도 똑같았다. 사령관은 서른 살 넘게 차이나는 여자를 무릎에 앉힌 채 팬티 바람으로 장준하 일행을 맞았다. 그의 손길은 여자를 애무하고 있었다. 장준하 일행이 앞에 서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만가만히 여자의 몸을 훑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여자는 사령관의 다섯 번째 첩이었다. 일행은 온갖 모욕을 견디며 언짢은 하룻밤을 보냈다. 첫 번째 안내원이 그리웠고, 그토록 보고 싶게 될 줄 몰랐다. 장준하는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나라를 잃지 않았어도 이런 봉변을 당할 리 없었다. 그러나 충칭으로 가기 위해서는 참고 또 참아야 했다. 뜻한 바를 얻기 위해서는 모욕을 이겨 내는 용기도 필요했다.
장준하 일행은 총을 어깨에 둘러멘 무장대원 10명과 함께 길을 떠났다. 이 지역은 팔로군과 자주 마주치는 지역이어서 낮에만 걸을 수 없었다. 밤이슬까지 맞아가며 걸어야 해서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행군보다 일행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무장대원들이었다. 이들은 일행을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고 놀렸다. 너희들 때문에 생고생을 사서하고 있다는 말투로 핀잔을 줬다. 마을을 지날 때는 일행을 사람들에게 ‘뀌즈’라고 놀리며 구경을 시켰다. 뀌즈는 도깨비라는 뜻으로 ’일본놈’을 낮잡아 부르는 속어였다. 일행은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사람에게 둘러싸여 흥미로운 구경거리 취급을 당했다.
닷새를 걸어 롱해선 철도 앞에 다다랐다. 이 철도는 진포선 철도와 달리 칠흑 같은 야음에 몸을 숨기고 몰래 넘어야 했다. 장준하 일행은 철도 앞에서 다음 유격대 안내원에게 인계됐다.
안내원 청년의 기략 - 중국 청년의 눈부신 활약
장준하 일행의 새로운 길잡이는 마음씨 착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무례한 10명의 호송병과 차원이 달랐다. 훤칠하고 시원한 용모에 친절까지 베풀 줄 알아 호감이 갔다.
롱해선 철도는 진포선 철도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살벌하고 깐깐한 초소였다. 수비 병력도 상당히 많이 주둔했고, 방어 장비도 튼튼했다. 경비초소는 밤새 서치라이트 불빛을 밝히며 주위를 감시했고, 집총한 군인들도 배치해 사람들의 접근을 철저하게 막았다. 신분이 불분명하거나 수상한 점이 포착되면 바로 총격을 가하도록 교육을 받은 일본군이었다.
철로를 건너기 위해서는 먼저 호를 넘어야 했다. 일본군은 철로 옆에 수로와 비슷한 호를 2미터 넘는 깊이로 파놓았다. 사다리 같은 장비가 없으면 절대로 건널 수 없는 높이였다. 안내원은 밤 1시에 철도를 건너자고 제안했다. 그때가 경비초소 보초들의 교대였다. 장준하는 걱정이 앞섰다. 일본군의 삼엄한 경계를 피해 철도를 건너는 게 그리 간단치 않아 보였다. 자신을 향해 총을 마구 쏘아대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고, 호는 사형 집행자를 위한 공간 같았다.
1시가 되자 보초들이 교대할 동료와 함께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꼬나물었다. 안내원이 굵은 밧줄을 어깨에 메고 앞장섰다. 장준하 일행은 막상 철도를 건널 때가 되자 온몸이 떨렸다. 아무리 가늠해 봐도 호를 쉽게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안내원의 표정은 대수롭지 않았다. 호 앞에 서서 밧줄 한쪽은 자신의 허리에 묶고 다른 한쪽은 호 아래로 늘어뜨렸다. 일행은 그 밧줄을 잡고 호를 내려갔다. 어떤 방법보다 간단하고 효율적이었다. 일행이 밧줄을 잡고 모두 내려가자 안내원은 호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달려가 암벽을 타듯 손으로 여기저기를 잡더니 휙 날아 호 위에 올라섰다. 전광석화처럼 재빠른 몸놀림이었다. 안내원은 내려갈 때와 마찬가지로 밧줄을 허리에 묶어 밑으로 내렸다. 일행이 모두 올라올 때까지 호 끝에 서서 버텼다. 장준하는 팽팽한 밧줄을 잡아당기면서 벽을 타고 기어올랐다.
장준하 일행은 같은 방법으로 두 개의 호를 무사히 통과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주 편하게 호를 건너자 안내원에게 무한한 신뢰가 싹텄다. 철도를 건넌 뒤에도 계속해서 안내해 주길 바랄 만큼 애착이 갔다. 하지만 안내원은 롱해선 철도를 건너는 일만 돕는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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