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칼로 새긴 장준하

023. 장준하 일대기 10 - 열렬한 환대에 눈물이 쏟아지다

이동권 2023. 8. 11. 22:35

수모를 참아 내며 - 패악질, 멸시와 굶주림

장준하 일행은 안내원이 하는 대로 똑같이 철로를 건넜다. 그가 할 때는 무척 쉬워 보였지만 막상 따라 해 보니 가슴이 짓눌려 숨 쉬기가 곤란했고 허벅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 쥐가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철로 건너기는 호를 넘는 것보다 식은 죽 먹기였다. 수풀이 웃자란 들판과 자잘한 자갈이 깔린 돌무더기를 포복으로 기어가다 철로에서 데굴데굴 옆으로 굴러 맞은편 돌무더기로 곤두박질치면 끝났다. 


철도를 건너자 또다시 호 두 개가 나타났다. 장준하 일행은 조금 전 건넜던 방식 그대로 밧줄을 타고 오르내리며 호를 넘었다. 일행은 모두 탈 없이 호를 넘자 서로 얼싸안으며 자축하고 다시 장정에 나섰다. 갈 길이 바빴다. 다음 안내원이 10리 밖 호숫가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안내원은 장준하 일행에게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고 끝까지 독립운동을 위해 싸우자는 작별 인사만 남기고 떠났다. 일행은 그와의 짧은 만남에 아쉬움을 토로하고 악수를 청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새로운 안내원 5명은 한동안 말없이 담배를 피우다 따라오라며 손짓을 했다. 일행은 그들의 지시에 따라 일렬로 늘어서 걸었다. 안내원들은 무장한 호송대원이었다. 


새벽 무렵 40리를 걸어 한 마을에 도착했다. 호송대원들은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전에 만난 호송대원 들보다 장준하 일행을 더욱 못살게 괴롭혔다. 당돌하고 고약한 언행은 물론이고, 행패까지 부렸다. 허기와 갈증을 표현하면 발길질을 해댔고, 마을을 지날 때마다 ‘뀌즈’라고 소문을 내 중국인들에게 조리돌리기를 당하게 했다. 중국인들은 장준하 일행을 나무 막대기로 찌르고 발로 차고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 내 웃기도 했고, 포로 취급을 하듯이 줄줄이 앉혀 놓고 그 앞을 느릿느릿 걸으면서 겁을 주기도 했다. 끼니도 챙겨 주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만 음식을 챙겨 먹고 장준하 일행은 구경만 하게 했다. 나흘 동안 먹은 음식이라고는 하루에 한 번 간신히 시장기만 면할 정도의 밀가루빵이었다. 


장준하 일행은 별다른 저항을 할 수 없었다. 민족의 자존과 독립을 위해 나선 약소국 사람들에게 모질게 대하는 중국군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이 땅의 주인은 중국인이었고, 거기에 의지해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는 한국인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팔로군을 만났더라면 이런 수모는 겪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자책까지 일었다. 

정성 어린 선물 - 나흘째 되던 날 저녁

장준하 일행은 나흘 밤낮을 걸어 다음 유격대에 도착했다. 무례한 호송대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자 기뻤다. 더욱더 발칙하고 방자한 안내원을 만날 수 있었지만 저들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일었다. 


호송대원들의 몰상식은 장준하 인행을 다음 유격대에 인계할 때도 끝나지 않았다. 두어 발짝 앞에서 발길질하는 시늉을 하며 조롱을 퍼붓는가 하면 경비병에게 빈정거리는 말투로 서한을 전하면서 일행을 향해 우롱 섞인 눈웃음을 살살 쳤다. 장준하는 꿈쩍도 하지 않고 호송대원들의 행짜를 그대로 넘겼다. 조국 독립을 위해 어떤 봉변이라도 참아 낼 각오가 돼 있었다. 일제의 발아래 조국이 유린당한 상황에서 그 나라의 국민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악물고 버틴 보람이 있었다. 사령관이 장준하 일행을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사령관은 장준하 일행의 초라한 몰골과 추레한 옷을 보면서 걱정을 아끼지 않았고, 중앙군이 한국의 청년혁명가들을 소홀하고 섭섭하게 대우한 것에 대해 일일이 사과했다. 일행이 민망할 정도로 진심 어린 사죄였다.


사령관은 인상이 서글서글한 미남이었다. 용모는 단정했고 성격은 온순했으며 신체도 단단했다. 특히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고 맑았다. 말싸움이나 주먹다짐이 벌어지기 전에 상대방을 먼저 제압할 만큼 힘찬 기운을 가진 인물이었다. 앳된 첩을 무릎에 앉혔던 사령관과는 완전히 달랐다. 장준하는 방탕하다 못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없었던 그가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사령관의 인품은 아래로까지 이어졌다. 그가 통솔하는 부하들은 장준하 일행을 존중했다. 예의 갖춘 몸차림과 긍정적인 태도로 일행의 닫힌 마음까지 열리게 했다. 사령관은 그동안 고생했을 장준하 일행을 위해 편안하게 목욕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또 만찬을 베풀어 기름지고 맛난 음식을 대접했고, 부하를 시켜 일행에게 정장을 새로 맞춰 입혔다. 한국이 백의민족이라는 것에 착안해 정장 색깔을 하얀색으로 정하는 세심함도 보였다. 장준하 일행은 사령관의 배려로 부대에서 며칠 동안 편히 쉬었다. 


사령관은 하얀 정장을 입은 장준하 일행을 보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떠나는 일행을 위해 노잣돈도 쥐어 주면서 몸 건강히 임시정부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랐다.

100리를 남겨두고 - 고향생각

장준하 일행은 사령관이 특별히 붙여 준 호송병들의 안내를 받으며 길을 나섰다. 호송병들의 태도는 한결 부드럽고 친절했다.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처럼 자부심도 가득했다. 이유가 있었다. 사령관은 일행이 떠나기 전 호송병들을 불러 일행을 최대한 안전하고 편하게 안내하라고 훈시까지 했다. 일행은 생각하면 할수록 사령관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다시 만나면 넙적 엎드려 절을 올리고 싶었다. 


하얀 정장은 장준하 일행의 몸마저 가볍게 했다. 여기저기 구멍 나 속곳이 비치고, 밑이 터져 거의 벌거벗은 거나 다름없는 거지꼴로 걸을 때와 다르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게다가 일본군의 관할지역도 벗어나 마음마저 평온했다. 여전히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했지만 팔은 쌀랑거렸고, 다리는 서붓거렸다. 장준하는 걷는 동안 눈부시게 부서지는 햇살과 눈길이 자꾸 마주치자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앞으로의 계획이 쉬 풀릴 것 같은 낙관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일행은 사흘 뒤 자그마한 도시인 궈양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그곳에서 100리 떨어진 린촨에 한국 청년들이 집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독립운동의 투사를 양성하는 광복군 부대였다. 장준하는 꿈에 부풀었다. 그토록 열원했던 독립을 한국 청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는 광복군에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해 기꺼이 한 몸 바쳐 싸우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며칠 동안 후덥지근하던 더위가 찾아오더니 쉴 새 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며칠 동안 계속됐다. 구질구질한 가랑비와 굵은 소나기가 쏟아지길 반복했다. 장준하는 비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늦은 밤이었다. 한동안 천둥이 몰아치더니 비가 아우성치듯이 내렸다. 장준하는 빗소리에 잠을 설쳤다. 광복군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그의 수면을 방해한 것은 조국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부모님은 건강한지, 아내는 무고한 지, 형제들은 평안한 지 모든 게 궁금했다. 비가 점점 거세지고, 밤이 깊어갈수록 그리움은 더해 갔다. 그는 가까이에서 가족들을 보살피지 못한 죄스러움이 컸지만 가족들이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가족들은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결연히 일어난 남아의 충정을 사사로운 이유로 반대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친일에 앞장선 자식과 연을 끊을 만큼 엄격했다.

낯선 부대에서의 환호성 - 뜨거운 함성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멈췄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마을 뒤 숲에서는 상쾌한 바람이 솨솨 불어왔다. 며칠 쉬어서인지 장준하 일행의 몸도 한결 가뿐했다. 일행은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아침 일찍 나설 채비를 했다. 광복군 동지들을 만날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장준하 일행은 조국 독립의 열망을 가득 안고 길을 나섰다. 말끔하게 빨아 놓은 하얀 정장에 간단한 음식과 물통이 든 봇짐을 짊어지고 힘차게 걸었다. 부지런하게 걸으면 저녁 안에 린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행은 달음박질하다시피 걸었다. 걸을 때마다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가슴속은 환희로 들끓었다. 만주벌판을 내달리는 독립투사가 머지않아 현실로 이뤄질 것 같아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장준하 일행은 생각보다 빨리 린촨에 도착했다. 린촨은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는 듯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일행은 핏줄에 이끌린 듯 현판조차 없는 낯선 부대 앞에 도착했다. 누군가 길을 안내해 준 것이 아니었다. 알지 못할 본능에 이끌려 도착한 부대였다. 장준하는 부대 안을 쳐다보았다. 사방이 조용하고 엄숙했다. 일행을 안내하던 호위병은 경비병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서한을 가지고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잠잠하기만 하던 건물 안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금의환향한 아들을 반기는 가족들처럼 뜨거운 박수와 열렬한 환대가 쏟아졌다. 조국의 광복에 목숨을 내건 한국 청년들이 장준하 일행을 반기는 소리였다. 먼저 달려온 청년들은 일일이 장준하 일행을 안기며 반겼고 뒤에 서 있던 청년들은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휘파람을 불렀다. 장준하 일행은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모국어가 그렇게 반갑고 정겨운 줄 몰랐다. 이국땅에서 배고픔과 갈증, 천대와 멸시, 나라 잃은 서러움으로 마음 고생했던 지난 2개월간의 풍상이 주마등처럼 스쳐 목이 메었다. 일행은 마중 나온 청년들을 향해 고맙다고 연신 얘기했지만 열화 같은 함성에 묻혀 목소리가 제대로 퍼져 나가지 않았다.


일행은 청년들 틈에 파묻혀 영내로 들어갔다. 커다란 문 위에 중앙군관학교 임천분교라고 쓰인 한문 글자가 큼지막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건너편에 커다란 연병장이 눈에 띄었다. 연병장에는 청천백일기(대만국기)가 펄럭였고, 몇몇 군인들이 팬티 바람으로 체력단련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군인들은 막사에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앉아서 쉬었다. 저녁때가 다될 무렵이어서 군사훈련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