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칼로 새긴 장준하

020. 장준하 일대기 07 - 민족의 운명을 가슴에 아로새기다

이동권 2023. 8. 9. 23:17

친일파 처단의 꿈 - 새로운 결심

당장은 일본군의 간교에 농락당하지 않았다. 사령관이 부대에 일본군 탈영병은 없다고 가짓부리를 떨어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장준하 일행은 또다시 포로 맞교환 같은 잔인한 얘기들이 나올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사령관이 일본군으로부터 타국의 아들을 지켜 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장준하는 되레 잘됐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가다가 죽더라고 사생결단으로 길을 나서서 임시정부로 가겠다고 결심했다.


다음날 김준엽은 허겁지겁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사령부의 진지 이동이 곧 시작되니 준비하라고 일렀다. 장준하 일행은 전날 지급받은 새 군복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별빛도, 달빛도 없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 일행은 중국군과 함께 어둠 속을 가르며 걸었다.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는 계곡을 지나,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을 지나, 울룩불룩한 바위가 들어선 골짜기를 지나, 만록이 우거진 숲을 지나 한나절을 꼬박 걸었다. 장준하는 험난한 길을 걸으면서 가슴속에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가득 채웠다. 앞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닥치거나 어떠한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기꺼이 한 몸을 바쳐 자주독립의 길을 걷겠다고 결기했다. 한편으로는 일제를 등에 업고 활개 치며 동포를 괴롭히는 악질 친일파 처단도 다짐했다. 일제의 손발이 돼 나라를 팔아먹은 민족반역자들을 소탕해서 정의로운 한국을 세워나가는데 일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장준하는 한겨레,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가 일본군보다 더 미웠다. 해방이 되면 우선적으로 친일 세력을 단죄해 한민족의 명예를 되찾고 싶었다. 


한국인 출생 일본군 중에는 강제로 징집돼 끌려간 학도병도 있었지만 일신의 이익을 위해 일본군이 되겠다고 발심한 친일 세력들도 꽤 많았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5.16쿠데타를 성공한 뒤 일본을 방문해 과거 만주군관학교 재학 시 교장이었던 나구모 신이치로를 만나 큰절을 올리며 술을 따랐다. 군사쿠데타를 성공하고 대통령이 된 것은 일본인 교장 덕분이라며 감사해했다. 아울러 유창한 일본말로 일본의 군국주의를 찬양하면서 정한론의 원조로 불리는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는 언사였다. 요시다 쇼인은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조선침략의 원흉을 길러낸 사무라이였다. 


장준하는 친일 세력의 발본만이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망국의 설움 대신 내린 용단 - 오욕을 씻다

행군은 질퍽거리는 길에서 멈췄다. 진지 가까운 곳에 강가가 있는지 아침 물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해가 뜨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숲을 덮고 있던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장준하는 민족의 어두운 운명도 하루빨리 걷히길 간절히 바라며 진지 세우는 일을 도왔다.


사령부는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고 잔치를 열었다.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지내게 해 달라는 제사의 의미도 있었고, 오랫동안 함께 고생해 온 전우들과 우애를 나누려는 마음도 있었다. 또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선배들의 넋을 기리고 스스로 명예스러운 투사로 나서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밝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장준하 일행은 쌀밥에 토막반찬을 곁들여 맘껏 포식하고 자리에 누웠다. 밤새 걸어서 그런지 잠이 몰려왔다. 바람까지 술술 불어 시원하게 잠에 빠졌다. 일행은 저녁식사 때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시장기를 대충 때우고 다시 혼곤히 꿈나라로 떠났다.


다음날 장준하 일행은 사철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불로하강으로 향했다. 이들은 군복을 홀딱 벗고 알몸으로 강물에 뛰어들어 물가에 나온 아이들처럼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큰 바위 위에 올라가 첨벙첨벙 물속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들은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겪었던 모른 시름을 강물에 흘려보냈다. 육신과 영혼에 깃든 오욕도 깨끗이 씻어 버렸다. 이제부터는 정말 시작이었다. 투사의 길, 독립의 길, 자주의 길에 모든 영육을 투신해야 할 때가 왔다. 


장준하는 칼을 찬 순사가 난데없이 학교에 찾아와 신사참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끌고 나간 일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그 일로 학교에서 갑작스럽게 해직돼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딸린 식구들을 먹여 살릴 일을 무엇보다 걱정했다. 그러나 장준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얼마나 많은 매국노들이 일제에 머리를 조아리며 면장을 하고, 교장을 하고, 경찰로 살았는지 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문학가들이, 음악가들이, 미술가들이 애국의 탈을 쓰고 친일 행각을 벌였는지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불로하강을 바라보며 민족의 운명을 통탄하는 일은 그만두기도 했다. 이역만리에서 풍찬노숙하고, 이리저리 떠돌며 동가식서가숙해도 망국의 설움 때문에 울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민족의 운명을 바꿔보겠다는 용단이었다. 

조선의 아들 - 불로하강변에서 애국가

장준하 일행은 목욕을 마치고 강가에 나란히 서서 동편 하늘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봤다. 태양은 조국 독립의 서막을 알리듯 불로하강을 환하게 비추며 빠르게 중천으로 떠올랐다. 장준하는 일행에게 애국가를 제창하자고 제안했다. 언젠가는 내 조국, 내 땅에서 부를 수 있기를 바라면서 큰 목소리로 선창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장준하 일행이 부른 애국가는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가 아니라 애란(아일랜드)의 민요곡에 가사를 붙인 것으로, 원곡의 제목은 작별이었다. 


장준하는 애국가를 부르면서 가사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특히 주목한 부분은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였다. 애국가의 노랫말처럼 대한사람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원수에게 훼손된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되찾아야 했다.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를 숙청하고 자주와 평화를 지켜내려는 정신을 전 국민적으로 배양해야 했다. 그는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 고민이 들었지만 뜻있는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모여 힘을 합치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장준하는 불로하강변에서 애국가를 부른 뒤 자신이 조선의 아들이라는 것을 더욱더 가슴속에 아로새겼다.


장준하는 대한민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질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만약 조국이 분단되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불로하강변에서 애국가를 부를 때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와 함께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에도 방점을 찍었을 것이다. 훗날 그가 조국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힘들어도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었던 점,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어떤 과제보다 통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발언한 대목이 이를 뒷받침한다. 

멀지 않은 독립 - 기습공격

장준하 일행은 목욕을 마치고 진지에 돌아왔다. 모처럼 몸과 마음을 씻고 나니 정신이 개운했다. 장준하는 자신이 새삼 4절까지 있는 애국가 가사를 전부 외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노랫말을 종이에 적었다.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나선 대한의 아들이 애국가를 끝까지 부를 수 없다는 게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연속해서 애국가를 불렀다. 노래 가사를 외울 때는 머리보다 직접 따라 부르면서 몸으로 익히는 게 빨랐다. 


사령관이 장준하 일행을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사령관은 일본군에서 탈출을 감행한 일행을 여러 번 칭찬하면서 일본군의 속사정을 물었다. 사령부는 적과 유격전을 하기도 했지만 갖가지 일본군의 동태를 파악해 전파하는 정보군의 임무도 있었다. 일행은 각자 보고, 듣고, 느꼈던 점들을 사령관에게 알렸다. 


사령관은 일행에서 중국 본토에서 일본군의 형세와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령관의 정세 판단은 장준하가 일본군 부대에서 교육받던 내용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일본군 교관은 학도병들에게 일본이 만주 일대를 점령한 뒤 대륙을 야금야금 복속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는 인력과 물자 부족에 허덕이며 싸움을 근근이 이어나갔다. 일본군 점령지역도 대륙의 일부 기관시설과 도시 정도로 미비했다.


장준하는 힘이 났다. 조금만 더 일본을 몰아세우면 독립이 멀지 않았다고 느꼈다. 또 전쟁터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학도병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생각보다 쓰카다 부대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중국군 부대가 주둔해 있으니 꼭 탈출하라고 독려하고 싶었다.


정준하 일행은 사령부 선전 일꾼으로 차출돼 일본군 삐라공작에 나섰다. 약한 고리를 건드리면 조직은 와르르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에 일행은 열과 성을 다해 일본군을 흔들어놓을 선전 작업에 참여했다. 


새벽 3시경 하늘을 째는 듯한 천둥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천둥소리는 다름 아닌 수류탄 터지는 소리였다. 중국군은 여러 방향으로 찢어져 몸을 숨겼다. 장준하 일행도 야간 기습을 피해 불로하강변 갈대숲에 숨어 있다 강변을 따라 2킬로미터를 걸어 산 정산으로 올라갔다. 산 밑에서 벌어지는 교전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