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여행과 사색

대통령별장 청남대 - 이도저도 아닌 욕망의 향연

이동권 2022. 8. 13. 17:33

최고급 대리석과 고풍스러운 가구, 고가의 수입 물품으로 인테리어 된 청남대 본관 - 본관은 1층은 388평, 2층은 247평, 지하 181평으로 되어 있다.


가볍게 날아오르는 새들의 맑은 울음으로 충만한 하늘.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단 한 번의 기회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물감을 산더미처럼 풀어놓은 듯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드는 색채로 물든 나무. 젊은 날의 청초한 방랑으로 유혹하는 미완의 정취가 상쾌한 바람을 타고 내 마음속으로 불어온다. 마치 절대자의 구원처럼 내 불안한 영혼에 위안을 베푼다. 쓰레기더미 같은 절망을 몰아내고 소리 없이 희망을 선사한다.

그래, 눈을 감고 한순간이라도 이 기분을 느끼자. 자연의 숨소리를 주시하자. 어떤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잠시라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삶을 대해보자. 그러면 내 삶과 운명에 우울한 절망이 찾아와 외톨이가 되거나 악의 수렁에 빠져 좌절하게 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그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리라. 삶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에 진정한 의미가 있고, 그 의미에서 인간의 길은 잘나든 못나든 모두 같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감미로운 노래를 읊조렸다. 반짝반짝 빛나는 대통령의 정원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쾌함이 넘치는 축제를 즐기거나 섬세한 빛을 뿜어내는 자연으로의 여행에서 느끼는 감동이 아니었다. 그저 무작정 떠난다는 설렘이 주는 기쁨이었고, 평이한 일요일의 일상을 다양한 경험으로 대신하는 색다름이었다.

청남대는 청남도 청원군 문의면에 위치한 대통령의 별장이다. 나는 인간의 노력으로 꾸며진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외도 해상농원도,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도, 아침고요수목원도 그랬다. 그저 떠났다는 느낌,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주는 행복이 대부분이었다. 오늘도 청남대 자체의 모습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모든 인식에는 단 하나의 대상이나 가치를 우선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에게는 바로 자연을 대하는 경우가 그렇다. 사람의 성격과 취향은 다양하기 때문에 수많은 경우와 표현으로 수식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자연은 절대자의 모습처럼 늘 하나의 모습으로만 존재한다.

나는 일요일 오전의 평화로운 시골 풍경에 더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고요한 산사에 들어선 늙은 범부의 발걸음처럼 숙연하고 조심스러운 명상에 빠졌다고나 할까. 그러나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청남대에 도착하자마자 침잠해 있던 나의 마음은 어느새 어린아이의 동심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과 들뜸으로 가득했다.

20년 동안 독재정권의 밀실이 되고, 권력의 가림막에 잠들어 있던 청남대, 참여 정부 출범으로 나와 같은 사람도 와볼 수 있게 되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참 마음에 든다. 

청남대. 충실한 농부의 자식이라면 대청호의 맑은 물과 산기슭에 자라는 견고한 수목이 먼저 눈에 보일 것이다. 작은 상처에도 연민이 솟아나는 아리따운 처녀에겐 유려한 정원의 화려한 꽃들이 먼저 눈에 보일 것이고, 시인의 마음을 지닌 어르신들에게는 세월의 비밀을 간직한 가을의 색채와 청춘의 소중함이 보일 것이며,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초소와 방공호, 그리고 청남대를 둘러싼 철창들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청남대 반공호

 

나에게는 화려하게 정돈된 정원과 수천만 원을 호가할 듯한 나무, 곱게 깔린 잔디밭과 골프장이 눈에 먼저 드어왔다. 


"이게 다 국민들 피고름으로 지은 거야"
(최고급으로 치장된 정원과 저택을 보며 40대 아주머니 하는 말씀)

"김대중이가 지었나?". "김대중이가 그런 인물이나 되나. 전두환이가 지었지."
(김대중을 폄하하고 전두환을 욕하는 60대 남자들의 말씀)

"우리가 심은 거여. 국민 세금으로 이 지랄을 하고...."
(소나무 한 그루에 2,000만 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60대 아주머니가 하는 말씀)

사람들을 살리는 나무는 언제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산기슭에서 자생하고,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나무는 언제나 정원에서 자라는 법이다. 그러나 청남대에는 나무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청남대에는 나무가 아니라 과시와 자기만족을 위해 치장된 사치품이 있었고, 전체적으로는 대통령의 탐욕이 얼마나 낮고 우스꽝스러운지만 보여줄 뿐이었다. 

전두환은 1980년 대청댐 준공식 때, 이곳의 자연환경에 반하여 별장을 짓게 했다. 공사기간은 6개월(6월에 시작하여 12월에 완성), 연말 휴가를 이곳에서 보내기 위해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시킨 것이다. 면적은 56만 평, 고급 수목으로 조성된 가로수와 정원, 식수원 대청호를 통한 최고의 수질정화시스템, 부대시설로는 수영장, 골프장, 양어장 등이 있다. 전두환은 이곳에서 적게는 매년 4~5회, 많게는 7~8회를 이용했다고 한다.

청남대는 국민공원과 식수원 훼손 등을 이유로 여론이 악화하자 1988년 5공 특별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국내의 대통령 별장 3곳을 폐쇄하고 청남대만 남겨 두었다. 이곳이 좋긴 좋나 보다. 어쨌든 더 이상 자연을 훼손하지 말고 깨끗하게 사용하길 빈다. 

청남대를 보니 수구세력의 핏발이 여전히 쌩쌩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여정부는 권위주의에 엉킨 실타래를 조금씩 풀기 시작했지만 뿌리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 말이다. 이럴수록 더욱 성숙한 의식으로 사회를 바라보면서 부조리를 바로 잡아갈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지닌 나이기를 마음 깊이 다짐해본다.

신앙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삶보다 오히려 더 어렵다. 스스로 성찰하는 자세를 통해 진실한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습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다 해서 의무와 권리가 소멸한 것도 아니고 그것을 자유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나 자신을 성찰하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책임이 바로 나에게 있음을 청남대는 가르친다.

 

청남대 양어장 - 양어장의 면적은 800여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