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강경대 평전

024. 떨어지는 꽃잎

이동권 2021. 11. 15. 15:59

명지대학교 교문 앞에서 전경들과 대치 중인 학생들

 

4월 26일 오후 3시. 선미가 서부서 유치장에 갇혀있을 무렵, 강경대는 500명의 학생들과 함께 전경과 대치했다. 이들 중에서 10여 명의 학생들은 대열의 선두에 서서 교문 밖으로 50미터 앞까지 진출해 있었다. 


경대는 이날 사회과학 학회원들과 함께 용인캠퍼스에 놀러 가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학내 집회가 있다며 선배에게 사정을 구하고 혼자만 빠졌다. 늘 그랬듯이 경대는 거리에서 싸우는 길을 택했다.


경대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새내기였지만 자기 삶의 방향을 정하고 매사를 결정했다. 그래서 학내 집회에도 열심히 참가했고, 궁금한 것을 선배에게 물으며 해답을 찾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아는 것보다 몸으로 실천했고, 깨달은 것을 고스란히 행동으로 옮겼다. 


그날 집회에서 경대는 연락책을 맡았다. 경대가 이 역할을 맡게 된 이유는 남다른 성품 때문이었다.


경대는 굉장히 솔직하고 순수한 학생이었다. 또 생각이 직선적이어서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제한된 정보 안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확하게 판단했고 거침없이 나서는 성격이었다. 남들이 ‘내가 귀찮고’, ‘내가 받을 피해’를 생각하며 적당히 눈감고 모르는 척할 때도 경대는 뒤로 빼는 일이 없었으며 공부하고, 즐기는 개인 시간을 모두 포기하고 헌신했다. 선배들은 ‘어쩌면 이러한 순수함이 경대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감지하면 본능적으로 물러서지만 경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위험할지라도 앞일을 재기보다는 행동으로 먼저 옮겼다. 


전경들은 선두에 있던 학생들을 향해 일제히 최루탄을 쐈다. 하늘에서 매캐한 최루가루가 흩어지면서 학생들의 시야를 가렸다. 학생들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고 머리를 숙였다. 이때 명성서적 옆 골목에 숨어 있던 백골단들이 뛰쳐나와 학생들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백골단의 급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강경대는 마음이 다급했다. 어떻게든 선두에 있는 학생들에게 갑잡스런 백골단의 출현을 알려 퇴로가 막히는 불상사를 막아야 했다. 


경대는 최루가루가 자욱한 선두를 향해 뛰었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본 제94중대 백골단들은 몸을 틀어 경대를 잡기 위해 달려갔다. 


94중대는 ‘오리지널 백골단’으로 통하며, 무자비하고 거침 없는 시위 진압 방식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일례로 서울대 학생 300여 명이 영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을 상영하기 위해 언덕 위에서 돌을 던지며 전경들을 막고 있을 때, 94중대 백골단 4명이 방패로 막으며 돌격하는 시범을 보여줄 정도로 용렬했다. 


희뿌연 최루가루가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하고, 득달같이 달려오는 백골단을 발견하자 선두 학생들은 담을 넘어 급히 몸을 피했다. 경대도 자기를 쫓아오는 백골단들을 발견하고 힘껏 뛰어 학교 담장에 올라섰다. 그때 한 백골단이 재빠르게 달려와 경대의 발목을 낚아챘다. 한쪽 다리만 올리면 자연스럽게 몸이 교내 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백골단은 경대를 잡아 끌어내린 뒤 담장 벽에 비스듬히 세워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았다. 이때 백골단 4명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115cm 길이의 쇠파이프로 경대의 가슴과 어깨를 마구잡이로 내리쳤다. 130cm의 각목으로 경대의 왼쪽 다리를 가격했고, 발로 허벅지를 난타했다. 


경대는 순간 숨이 멈출 것 같은 극렬한 고통을 겪으면서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폭행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백골단들은 100cm의 쇠파이프로 경대의 왼쪽 다리 부분을 내리치고 발로 배를 계속 걷어차면서 경대의 머리를 잡은 채 경찰 진압봉으로 머리와 팔, 상체를 무차별적으로 가격했다. 


경대는 그 자리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경대가 피비린내 나는 땅바닥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몸부림은 그저 몸을 웅크린 채 고통을 견뎌내는 것밖에 없었다.


교내에 있던 학생들은 짐승 같은 백골단들이 한 인간을 죽일듯이 폭행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어. 저기. 백골단들한테 맞고 있는 애, 경대 아니야.”
“맞아. 그런 것 같아.”


학생들은 경대를 구하기 위해 사생결단으로 달렸다. 하지만 경대를 살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경대가 쓰러진 뒤에도 백골단들의 구타가 계속되면서 경대의 동공은 이미 풀린 상태였다.


백골단들은 의식이 혼미해진 경대를 2미터 정도 끌고 가다가 길 위에 내팽개치고 도망쳤다. 경대는 전경들이 사라지자 본능적으로 온 힘을 다해 일어나 다시 담장을 넘어가려는 동작을 취하다가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져버렸다. 


학생들이 도착했을 때, 경대는 가느다란 숨을 내쉬고 있었지만 이미 온몸이 축 늘어져 손가락 하나도 가누지 못했다. 얼굴은 만신창이였다. 이마에서 눈을 지나 뺨까지 10cm가량 길게 찢어졌고, 눈썹 위 움푹 파인 곳에서는 피가 철철 넘쳐 흘러내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경대를 들쳐 메고 학교 보건소로 달려갔다. 그러나 보건소 직원은 경대가 숨을 쉬지 않은 것 같으니 큰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돌려보냈다. 

 

4월 26일, 명지대 학생들이 ‘학원자주 완전승리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전경과 충돌했다.
경찰은 학생들을 검거하기 위해 유인작전을 구사했고, 골목 곳곳에도 백골단을 배치했다.
1991년 당시 故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규탄과 공안 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 대책회의의 선전물

 

학생들은 서둘러 차량을 수배한 뒤, 경대를 실고 북가좌동에 있는 성가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먼저 경대의 호흡 여부를 살폈다. 동공을 관찰하고 맥박이 뛰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인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애도하듯 말했다. 


“사망했습니다.”


여기저기서 통곡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암담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절규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울고만 있을 수 없었다. 향후 복수를 위해서 감정을 정리하고, 경대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학생들은 경대의 사망 소식을 지도부에 알리고, 혹시 모를 ‘시신 침탈’이나 ‘사건 조작’을 우려해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으로 시신을 옮겼다. 


선배들과 동기들은 상상할 수 없는 현실에 맞닥뜨리자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싸워나갈지도 막막한 데다 정세가 어떻게 돌변할지 예측하기도 힘들었다. 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슬픔이 찾아왔다. 갓 입학한 새내기의 억울한 죽음에 가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면서 스스로 책망했다.


‘함께 도서관에나 다니면서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텐데.’
‘경대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특히 경대가 맞아 죽어가면서 발버둥치는 모습을 본 학우들은 더했다. 경대의 죽음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자책하며 경대를 두 번 죽이지 않겠다고, 경대를 다시 살리는 일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결심했다. 


경대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학우들은 경대 부모님의 얼굴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이 사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부모님들이 슬픔을 어떻게 견뎌 내실지 걱정이 들었다. 너무너무 죄송하다는 생각에 숨 쉬는 것조차 마음이 아팠다. 


동기들도 슬픔이 컸다. 인생의 버팀목이 될 친구를 이제야 만났다며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경대를 잃자 망연자실했다. 특히 배우고 깨닫고 사랑해야할 것이 너무도 많은 나이의, 경대에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고, 도리어 앗아가버린 현실이 원통하고 분했다.


경대의 소식을 들은 명지대생 5백여 명은 스크럼을 짜고 인도를 따라 연세대 쪽으로 행진하면서 구호를 외쳤다.


“강경대를 살려내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피울음에 가까웠다. 학원자주화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잔혹한 폭력으로 짓밟은 노태우 정권에 대한 분노였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찬란한 청춘의 서곡이 시작과 함께 끝나버린 것에 대한 참담함, 또 경대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젊음도 끝나버린 것 같은 절망감이 깃들어 있었다. 


학생들은 병원 앞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병원 정문과 영안실 앞 등에 쇠파이프를 들고 서서 가족을 뺀 외부인은 영안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입구를 통제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연이어 서울 지역 대학생 1,500여 명도 병원으로 달려와 결의대회를 열고 밤샘 농성에 합류했다.


밤 9시 30분경, 뒤늦게 영안실 8호실에 경대의 시신이 안치됐다. 병원에서 시신 안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병원 측은 냉동고가 부족하다는 핑계를 둘러댔지만 연세대가 시끄러워지길 원치 않았던 이유가 컸다. 병원은 또 경대의 시신을 공개하지 않아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강력한 항의로 경대의 시신은 이날 밤 11시 40분경 10여 명의 사진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5분 동안 공개됐다. 


가족들은 경대의 시신을 보자마자 피를 토하듯 오열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경대는 뒷머리에 피가 흥건히 젖어 있었고, 오른쪽 눈썹 위가 깊게 패어 있었다. 또 가슴에는 다섯 줄의 쇠파이프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고, 왼쪽 팔 전체와 신체 곳곳에 빨간 멍이 들어 있었다.


영안실 직원이 경대의 시신을 다시 냉동고에 넣으려고 하자 아버지는 직원을 밀치고 경대의 뺨을 애절하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사진기자들을 향해 울부짖으며 말했다.


“그놈들이 경대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이 모습을 찍어 세상에 널리 알려 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빈소에 찾아와 조문했다. 모두 아들을 잃은 슬픔을 위로할 만한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같은 일을 당했던 민주화운동유가족들은 그 슬픔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에 눈물을 닦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참 잘생겼다. 잘생겼어. 억울해서 어떻게 해.”
“오메 죽일 놈들. 이렇게 잘생긴 아들을 백주대낮에 때려죽여.”
“…….”


선미는 빈소에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라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았구나. 그런데 노태우 정권은 권력에 대한 탐욕이 너무 크고 인간답게 살려는 양심이 전혀 없어. 사람들이 한 번쯤은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경대야 힘내. 너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게.’


4월 27일 경대가 죽은 다음날 ‘故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 규탄 및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19)’가 꾸려졌다. 


대책회의는 경대의 죽음을 현 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 민주세력을 폭력으로 탄압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명백한 살인행위라고 규정하고 노태우 정권 퇴진과 내무부장관 사퇴, 치안본부장, 서울시경국장, 서부경찰서장, 현장지휘 중대장, 가해전경 등의 즉각 구속, 박광철 명지대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요구했다. 또 4월 27일부터 5월 2일까지를 ‘백만 학도 추모기간 및 살인정권 규탄 주간’으로 선포하고 전국 대학에서 공동으로 추모하고 규탄투쟁을 벌일 것을 천명했다.


경대는 대학에 입학한 지 2개월도 되지 않은 신입생이었다. 의식의 씨앗을 틔울만한 배움의 시간도 부족했고,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몰랐다. 이를 두고 혹자는 ‘1학년이 무엇을 알아서’ 라고 폄훼했다. 


그렇다. 경대는 비겁함을 몰랐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 도움이 되는 것도 몰랐다. 이념적 사상이나 종파주의도 몰랐고, 갈라진 분단조국 앞에서 선배들이 왜 분열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경대는 적어도 자신이 궁금해하는 문제들의 해답을 찾기 위해 시위에 참여했던 것은 분명하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몸으로 옮기고, 말과 이론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을 사상화 하려고 했다. 그것이 진정으로 올바른 길이었기에, 거기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경대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19) 4월 26일 발생한 명지대 강경대 학생의 사망으로 27일 국민연합·전대협·신민당 등 44개 단체와 정당이 참여해 ‘故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 규탄 및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를 구성했다. 대책회의는 강경대 열사 장례식을 주도했으며, 5월 15일 ‘공안통치 종식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로 명칭을 바꾸고, 제2차 국민대회를 주관했다. 

 

영안실을 지키고 있는 학생들
경대의 영안실 번호를 알리는 종이
故 강경대 열사의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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