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대가 사망하자 유가족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신속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도 사건의 여파를 잠재우기 위해 갖가지 조치를 단행했다. 경대의 죽음은 몇몇 백골단의 소행에서 비롯된 ‘사고’가 아니라 노 정권의 무자비한 공안통치가 부른 ‘살인’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됐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권은 경대가 사망한 다음날, 이례적으로 안응모 내무부장관을 경질하고, 시위 현장을 지휘했던 서장을 직위 해제했다. 그러고선 경대의 사인을 놓고 ‘물타기’ 공작을 시도했다. 전경은 쇠파이프를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강경대는 아마도 날아오는 돌에 맞아 사망했을지 모른다고 얼버무렸다. 서울시경도 시위진압에 나선 백골단은 사과탄 두 개와 50cm 길이의 플라스틱 경찰봉과 방패 등 정식 장비만 갖췄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평소 쇠파이프에 청테이프를 칭칭 감고 시위 진압에 나선 백골단들을 자주 봤던 학생과 시민들에게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명백한 증거와 목격자 앞에서 민중의 분노를 키우는 촉매가 될 뿐이었다.
아버지는 정부의 거짓말을 지켜보면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경대는 누가 뭐래도 경찰한테 맞아 죽은 것이 확실하다. 시신을 두 눈으로 확인한 결과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경대의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어느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겠다. 정부는 솔직하게 사건의 진상을 밝혀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노 정권은 모든 게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경대의 죽음을 단순한 학내문제 때문에 불거진 우발적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경대를 구타했던 전경들을 신속하게 구속했다.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수사했다는 명분으로 사태를 축소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학생들과 시민들은 정권의 기만적인 행태에 더욱 분노했고, 이러한 분노는 전국적인 항쟁의 시발점이 됐다.
두려움을 느낀 노태우 정권은 이 사건이 정권퇴진운동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은폐, 조작을 계획했다.
우선 시신의 부검을 지시했다. 백골단 개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가며 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술책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를 간파한 유가족과 대책위는 부검을 강하게 반대했다. 외부적 사인이 명확하고, 현장 목격자가 여러 명인 데도 불구하고 부검을 강행하는 것은 경대의 죽음을 은폐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법의학적으로도 외부충격에 의한 타살은 ‘부검’이 아니라 사체를 정밀하게 진단해 사인을 밝히는 ‘검안’이 옳았다.
경대의 사인을 밝히는 방법은 거친 말이 오가는 공방 끝에 부검 대신 검안으로 결정됐다.
유가족과 대책위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의뢰해 정밀 검안을 실시했다. 사인은 외부상처 관찰, 방사선과 CT촬영을 통해 ‘외부가격에 의한 심낭 내 출혈’로 결론 났다.
가족들은 검안할 때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빠졌다. 불과 며칠 전에 마주앉아 얘기하던 경대가 온몸에 멍이 들고 피범벅이 된 것을 보고 떨려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노태우 정권과 끝까지 싸워서 경대의 원혼을 풀어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우리 가족은 어둠 속에서 살아왔어. 나라 꼴이 이 모양인데 깨닫지 못하고 경대가 죽고서야 눈을 떴구나. 앞으로 생활에만 만족하거나 치이지 않고 나라를 위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갈게. 비록 너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역사 속에서 영원히 남을 거야. 국민들이 너를 끝까지 기억하고, 지금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도록, 이 나라의 잘못된 점을 고치기 위해서 계속 살아 움직여 줬으면 해. 경대야 힘내자.’
가족들은 경찰의 폭력에 경대가 숨진 것이 확실한 만큼 책임자에 대한 처벌과 폭력진압에 대한 개선책을 강구하기 전까지는 장례절차를 이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검찰은 몇 차례나 사인 판명을 미뤄 유족들을 분노케 했다. 또 경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직위해제한 서부경찰서 서장은 5월 투쟁이 끝난 뒤 복직돼 경찰청 수사과장으로 승진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유족들은 국민을 우롱하는 노태우 정권의 작태에 또 한 번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지금도 가족들은 경대 사진만 보면 가슴이 뜨끔하고 눈에서 눈물이 핑 돈다. 경대의 얼굴이 맞는지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또 쳐다본다. 하지만 경대는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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