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미술과 인물

이동환 '칼로 새긴 장준하'전 - 목판화의 힘 느끼게 하는 흑백의 강렬함

이동권 2022. 10. 28. 01:38

전시장 전경


사자의 무덤을 찾고, 역사와 마주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을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공부나 애도의 의미보다는 반성적 자기 성찰을 위한 행위다.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설정하고, 내면적 자각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이동환 화가가 장준하 선생의 일대기를 134장의 판화로 새긴 이유도 다르지 않다. 바쁜 현실에 쫓기면서도 3년 동안 장 선생의 삶에 집중했던 동기는 숨김없는 고백과 반성의 시간을 통해 생활의 중심을 잡고, 나아가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는데 작은 밀알이라도 되기 위해서였다.

오랫동안 미술관을 들락거리면서 지나치게 아카데미적이거나 요란스럽게 포장된 전시는 부담스러웠다. 누구를 위한 전시인지 주객이 전도된 느낌도 받았다. 이동화 화가의 목판화전은 달랐다.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그야말로 깨끗하고 담백했다. 자질구레한 액세서리를 모두 거세하고 오로지 목판화에 심취하게 만들었다.

이동환 화가는 장준하 선생이 직접 쓴 수기 「돌베개」를 읽고 통렬한 아픔 같은 것이 가슴 한편에서 느껴져 판화작업을 시작했다. 평생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과 통증에 맞섰던 투쟁, 숱한 의문을 남기고 허망하게 생을 달리했던 장 선생의 삶이 그에게 준 충격이 대단했으리라.

1층 전시장에는 장준하 선생이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이야기, 감옥 같은 일본군에서 탈출한 뒤 6천 리를 걸어 광복군이 된 이야기, 해방 이후 어지러운 한국 사회를 겪은 이야기, 숙적 박정희와 맞서다 1975년 8월 17일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사하는 이야기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2층 전시장에는 이동환 화가가 칼로 새긴 실제 목판화와 그가 별도로 제작한 대작 3점이 함께 소개됐다.

 

전시장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