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하고 엷은 산풍(山風)이 숲과 들을 스치며 소리를 낸다. 풀과 나무들이 푸른 수면처럼 드넓게 공기와 부딪치며 쏴르르르 몸을 떤다. 그 소리에 탐욕과 욕망의 불꽃은 잦아들고, 순백의 자아와 마주 선다. 지상을 초월한 영적인 존재, 아름다운 정령과의 조우의 시간을 마련한다.
반복되지 않는 패턴이 펼쳐진다. 세밀하고 자연스러운 묘사에 감탄이 쏟아진다. 하얀 토끼털과 같이 부드럽게, 초록 비단처럼 '자크르'하게 눈앞에서 흔들거린다. 사실 그대로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심상을 반영해 화면을 채우기 때문이다. 세상의 일이 모두 그렇다. 진심을 보지 못하면 인간관계도 어긋나듯이 그림도 겉모양만 보면 그림을 제대로 좋아하기 힘들다.
이도연 작가의 작업은 한마디로 공양이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붓을 들지 않으면 힘든 노동, 자연의 생명력과 경이로움에 깊게 매료되지 않으면 단 한 뼘도 그려내지 못할 그림이다. 자연의 현현(顯現)이 환희처럼 다가온다. 그녀는 작은 점과 가는 붓 터치의 작업을 통해 무한한 자연의 세계를 관조한다. 한 겹, 두 겹 캔버스를 덮는 반복적인 행위를 하면서 명상의 공간에 빠져들고, 자연의 무한함을 발견하면서 캔버스 채워 나간다.
이 작가의 그림은 힘이 있다. 자연의 향연은 언제나 사색의 나래를 펴게 했다. 숨을 멎고 부동의 자세로 서서 자신의 사소한 모습까지 보게 했다. 그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는 우리가 주위 깊게 보지 않았던 일상을 발굴해, 세속의 일에만 치여 살아가는 현대인을 자각시킨다. 인간이 평생 매달리고, 하루하루 떠올리는 사유가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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