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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 리의 전쟁, 더 배틀 오브 광주 -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지상 감독 2015년작

이동권 2022. 10. 28. 01:06

미쓰 리의 전쟁, 더 배틀 오브 광주, 이지상 감독 2015년작

 

1980년 5월. 3만여 명의 계엄군이 광주에 투입돼 살육 잔치를 벌였다. 이들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비무장의 시민을 총으로 쏴 죽이고, 대검으로 찔러 죽이고, 진압봉으로 때려죽였다. 정치인과 민주화운동가, 성직자와 지식인들은 계엄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취를 감췄다. 반면 구두닦이, 방직공, 다방 종업원, 공병수집상, 자개공 등 사회적으로 천대받았던 이들은 광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사투에 나섰다. 

"무기를 돌려줘야 해요, 계란으로 바위 깨기요."라고 설득하는 종교인, 교육자, 정치인에게 시민군들이 외치는 목소리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귓가에 쩌렁쩌렁 울린다. "뭐여. 이 호로 상놈의 새끼들이 설레발 까는 거여. 뭐여. 시방. 니미 교사고 목사고 나발이고 모두 독재 때 앞잽이로 설레발 치던 놈들 아니여. 광주가 이렇게 됐는디 또 설레발 쳐 댐서 광주를 기생집으로 만들겠다는 거여 뭐여. 그런 씨발놈들 내가 다 목을 따불라니까 모두 나가." 

민중을 위한 권력은 없었다. 부패한 권력은 공포로 국민을 짓눌렀고, 믿었던 권력은 듣기 좋은 얘기로 공수표를 남발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권력은 80년 5월에 목숨을 걸고 싸웠던 시민군을 숭고한 영웅으로 승화시키면서 그들을 위로하려고 했다. 그러나 영웅이 된 시민군의 이야기는 탈정치와 무관심을 불렀다. 그들의 죽음이 역사책에서나 나오는 신화로 포장되고 만 것이다. 

영화 <미쓰 리의 전쟁, 더 배틀 오브 광주>는 마비된 정신을 오롯이 깨웠다. 시민군은 길거리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며, 나만 바라보며 사는데 열중하는 동안 '공포'와 '듣기 좋은 얘기'에 우리가 무감각해졌다는 사실을 온전하게 떠올리게 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완전히 끝난 역사가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민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은 광주민주화운동이 미완의 봉기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암담할 뿐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은 속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 의미도 제대로 되살려지지 않았다. 학살 책임자들도 당당하고, 권력의 횡포도 여전하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아예 모르는 젊은이들도 많다. 잊은 사람도 상당하다. 광주시민을 아직도 빨갱이라고 몰아세우는 족속도 있으며, 일부 인터넷 사이트와 종편 언론은 계속해서 '5.18 북한 개입설'을 제기하고 있다. 

<미쓰 리의 전쟁, 더 배틀 오브 광주>는 80년 5월을 재조명한다. 그해 5월 27일 계엄군과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던 시민군의 절절한 사연과 의기를 실험적인 방식으로 그려 낸다. 가장 특이했던 점은 마임이나 연극적인 요소다. 예를 들면 이 영화에는 총성과 피는 가득하지만 총은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적 대립과 인간적 고뇌에도 초점을 맞춘다.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들은 경상도 출신의 공수부대원이었다. 이들 중에는 광주시민을 폭도, 빨갱이라며 극도의 잔인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민간인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군인도 있었다. 영화 속 김 일병은 시민군을 차마 총으로 쏘지 못하고 망연자실한 얼굴로 엄마를 찾는다. 옆에 있던 마하사는 "이 시발놈. 경상도 문디이 새끼 맞나"라고 소리치며 개머리판으로 김 일병을 갈긴다. 

이 영화는 노래와 영상, 갖가지 상징으로 구성돼 난해한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영화를 사랑하고, 약간의 인내심만 있다면 이 영화는 진한 여운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 속 내용, 이지상 감독이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에 공감한다면 이 영화를 관람한 감동은 더할 것이다. 시민군은 계엄군을 몰아내고 5월 22일부터 26일까지 5일 동안 해방광주를 맞이한다. 광주시민들은 말한다. "아따 요놈의 세상. 죽기 전에 순경 없이, 돈 없이 돌아가는 거 한번 보고 잡았는디, 어짜면 이렇게 잘 돌아가블까. 요것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제. 그 봄 새악시 같은 말을 어찌 잊어버렸을까. 사람 사는 세상." 아울러 감독은 다방 종업원 미쓰 리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며 외치는 절규를 통해 자신의 참담한 심정도 밝힌다. "오빠들, 정말 사람이라예."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오월의 노래가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쓰러진 너의 붉은 피 /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