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쓸쓸한 섬 미륵도. 이곳에 한 노인이 살고 있다. 노인은 홀로 고행하면서 가시밭길 같은 마음을 다스린다. 억겁 동안 켜켜이 쌓인 인간의 업을 대신 짊어진 수도승처럼 혹독한 성찰로 자신을 이끌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적막한 섬을 깨우는 것은 전화다. 전화벨이 울리면 손님이 찾아온다. 노인은 그들에게 떡을 쪄서 먹인다. 먼 길을 가는 손님을 걱정하며 뽀얀 떡을 쥐어 보낸다. 첫 손님은 삼십 대 남자, 그다음은 쥐다. 노인은 이들을 담담하게 마중한다.
그다음 손님은 선생님과 학생 두 명이다. 노인은 오지 말아야 할 손님이 찾아온 것처럼 흥분한다. 평정심을 잃고 극도의 불안과 혼란에 빠지고, 급기야 분노한다. 노인은 돌부처의 머리로 쌀을 찧고, 부서진 절구통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파계다.
영화 <눈꺼풀>은 줄거리만 보면 단순하다. 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작품이다.
바다라는 장소와 손님의 정체, <눈꺼풀>이라는 제목이 함의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륵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가상의 공간으로 읽혔다. 노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은 자들을 저승길로 인도하는 저승사자고, 떡은 노잣돈으로 보였다. 그 길목에서 노인은 죄 많은 인간을 가장 순수했던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고해성사를 떡을 찌는 과정으로 대신했다. 그러나 노인은 뜻하지 않은 죽음을 목도하고 평정심을 잃었다.
이 영화는 죽음의 이유를 묻는 진혼이다. 분통한 죽음을 달래는 곡성이다. 노인은 억울한 죽음 앞에 진노하고, 바다는 어처구니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넋을 하나하나 위로한다.
오멸 감독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세월호와 자연스레 겹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깊은 바닷속에서 진흙을 뒤집어쓴 채 눈꺼풀을 끔뻑이는 사람이 영화가 끝난 후 오랫동안 진한 여운을 남긴 이유도 다르지 않다.
<눈꺼풀>은 침착하고 낭랑했다. 오멸 감독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제주 4.3항쟁 영화였다. 다소 기기괴괴하고 많은 고민을 남기기는 했다. 명료하고 재밌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슬>의 영상미를 고스란히 잇는 내러티브는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풍뎅이, 뱀, 지네, 달팽이, 염소 같은 생명체를 스크린으로 불러들여 전체적인 영화 분위기를 신비롭게 만들었던 점도 훌륭했고, 능멸과 증오가 충돌질하는 인간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메시지도 가슴을 덥혔다.
이 영화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위로하지 산 자들을 치유하지 않는다. 치유는 다름 아닌 분노와 진실이다. 종기는 피와 고름을 짜내야 치유된다. 그 피고름을 짜내지 않으면 곪고 곪아 영육까지 황폐해지고 만다. 세상을 살다 보면 황금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 노인이 분노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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