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용납될 수 있을까? 천재들은 여느 시대를 막론하고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남다른 고통을 겪었다. 그래도 천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할 수는 없다. 영화 <생 로랑>을 봐도 그렇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주위 사람들을 항상 조마조마하게 만들었고, 자신의 재능을 보증삼아 갖가지 난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향락과 쾌락에 몰두한 천재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논하고 싶지 않다. 그의 성적 지향 또한 논외다. 얘기하고 싶은 점은 단 하나, 옷에 대한 이브 생 로랑의 열정이다.
영화 <생 로랑>은 2014년 개봉된 영화 <이브 생 로랑>과 자연스레 교차됐다. <이브 생 로랑>은 재미와 대중성을 추구한 영화였다. 표현의 수위도 거북하지 않은 수준에서 선을 그었다. 반면 <생 로랑>은 인물과 예술성에 집중했다. 다시 말하면 일반적인 격식에서 벗어났고, 스토리보다는 이미지로 그의 삶을 각인시켰다. 그래서 어떤 관객들은 조금은 지루하게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생 로랑>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점은 옷에 대한 천재의 열정이다. 이브 생 로랑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먼저 <이브 생 로랑>을 봐야 한다. <생 로랑>을 먼저 보면 이브 생 로랑의 광기에 질식부터 해버릴지 모른다.
이브생로랑은 채워지지 않은 공허를 채우기 위해 살았다. 일상은 파격 그 자체였다. 술, 담배, 마약, 섹스 등 영락과 방탕의 끝판이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옷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이브 생 로랑은 21살에 프랑스 최고의 의류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디자이너가 됐다. 크리스찬 디올은 죽으면서 수석디자이너 자리를 이브 생 로랑에게 넘겼다. 하지만 그는 알제리 독립 전쟁이 벌어지면서 병역기피자로 낙인이 찍혔고, 군에 징집돼서는 군 부적응자로 정신병을 앓다 약물중독자가 됐으며, 그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브 생 로랑은 크리스찬 디올에서 강제 해고됐다. 하지만 그는 옷에 대한 열정 하나로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해 전 세계 오뜨 꾸뛰르와 기성복 시장을 휘어잡았다.
이브 생 로랑은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장 많이 보유한 패션 혁명가’, ‘시대를 견인한 천재 아티스트’로 불린다. 그 천재성에는 카리스마와 순수함이 가득했고, 그것은 고스란히 독창적인 옷으로 탄생됐다. 예를 들면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지 않은 시절에 여성을 위한 바지 정장을 개발했고, 패션쇼에 최초로 음악을 사용해 무대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하지만 그는 무르고 약한 사내였다. 억압과 규율은 그의 상상력을 방해하는 가장 가혹한 고문이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평가와 기대, 비판에 대한 책임을 몹시 힘겨워 했고, 현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술과 마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 영화에서는 이브 생 로랑과 함께 그를 최고의 디자이너로 성공하게 만들었던 동성 애인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의 삶도 유심히 살펴볼만하다. 만약 피에르 베르제의 조력이 없었다면 아마 이브 생 로랑은 옷에 대한 열정을 펼치지 못했을 것이다. 피에르 베르제는 이브 생 로랑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았고, 그를 삶 또한 온전한 것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언제나 이브 생 로랑을 사랑했고 보호했으며, 그림자처럼 그를 도왔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난 사람도 모든 일을 잘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도움과 희생 없이는 홀로 오롯이 서지 못한다. 이브 생 로랑의 최고의 패션쇼 무대는 오직 그의 밑에서 일했던 디자이너들이 그의 스케치만을 보고 만들어낸 작품이다. 비록 아이디어는 이브 생 로랑이 냈지만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옷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 잘난 줄 안다. 그러다 교만하고 아집에 빠져 말년을 외롭게 보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브 생 로랑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했으며, 고마운 마음을 보답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야기 > 그래 그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쿠시마의 미래 - 죽음의 땅 체르노빌에서 상상한 우리의 미래, 이홍기 감독 2013년작 (0) | 2022.10.28 |
---|---|
명량: 회오리 바다를 향하여 - 명량해전 직전 16일간 이순신은? 정세교, 김한민 감독 2015년작 (0) | 2022.10.28 |
버드맨 - 삶의 아픔에 눈을 뜨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2014년작 (0) | 2022.10.28 |
위플래쉬 - 최고란 명성인가 평판인가, 데미안 셔젤 감독 2015년작 (0) | 2022.10.28 |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 멋지고 웃기게 계급적인 영화, 매튜 본 감독 2014년작 (0) | 2022.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