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관습적인 성공을 인생의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누구나 우러러보는 좋은 자리에 오르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생각하고, 기성세대 또한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인내하라고 설교한다. 왜 그런 것일까?
성공의 의미를 ‘채우는 것’에 두어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것보다 오래된 생각을 비워내는 것이 우선이다. 틀에 박힌 사고를 먼저 비워내지 못하면 새로운 것이 들어갈 공간은 없다. 따라서 성공은 채우는 것에만 몰두하는 동시대 사람들의 빈곤함을 아는 것부터 시작된다. 명성이나 재물이 아니라 단순하게 즐기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가슴 깊이 느끼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타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행복도 뒤따른다.
영화 <버드맨>의 주인공 ‘리건 톰슨’에게 성공은 오로지 대중적 인기를 얻는 것뿐이다. 팬들이 몰려다니고, 출연 요청이 쇄도하고, 광고수익도 짭짤한 절정의 스타가 되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다. 그래서 그에게는 항상 근심과 불평이 따라다니고 심중은 혼란과 갈등으로 가득하다.
<버드맨>은 한물간 할리우드 스타의 가식적인 권위가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은 너무도 리얼하다. 도덕적인 기준을 완벽하게 거부하면서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의 처참한 뒷 세상 몰골을 여과 없이 그려낸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이토록 참혹한 현실이 있을 줄 상상조차 못 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온통 신음소리이고, 피바다다. 비단 할리우드뿐일까. 모든 인간사는 곡절도 많고, 한숨과 눈물이 그칠 날도 없으며, 실수와 후회로 되풀이된다.
이 영화 주인공 ‘리건 톰슨’은 이대로 자신의 인생이 끝나버리는 게 아닌지 두려움에 빠진 ‘일수거사’다. 그는 배트맨, 슈퍼맨처럼 한때 전 세계 영화시장을 쥐락펴락했던 할리우드 톱스타였다. 한 번도 두렵거나 굴욕적이거나 상처 입은 적 없이,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30여 년이 흐른 뒤 ‘버드맨’의 명성은 점점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그는 대중에 잊힌다는 극도의 불안에 시달렸다.
그는 재기를 노린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해 브로드웨이에 연극을 올린다. 그것도 1960년대에 발표된 고리타분한 작품으로, 배우로서 다시 한번 인정받길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은 갑갑하다. 혼잡과 무질서의 결정판이다. 재기의 강박에 시달리는 그에게 자금 압박, 출연배우들의 난행과 지독한 불안감, 그를 무시하는 딸 등 악화 일로의 혼전이 계속된다.
그런데다 그의 눈에는 오직 야망만이 번뜩인다. 아직까지 자신이 배우로서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도 모른 채 과거의 영광에만 사로잡혀 있다.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대중의 인기에 집착해왔고, 연극 또한 오직 바닥에 떨어진 인기를 올리는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브로드웨이 연극의 흥행 여부를 쥐고 있는 저명한 평론가는 스스로 성찰하지 못하고 대중의 관심에 집착하는 그에게 일갈한다.
“당신은 연예인이지 배우가 아니야. 내일 오프닝이 끝나면 나는 사상 최악의 악평을 쓸 거야. 그럼 당신 공연은 막을 내리겠지. 이유를 알고 싶어. 난 당신이 싫어. 당신이란 존재의 모든 게. 거만하고 이기적이고 응석받이 같아. 예술을 한다면서 배울 노력도 없고, 준비도 안 돼 있어. 주말에 벌어들인 돈으로 성공을 측정하지. 당신 연극을 죽일 거야. 당신 때문에 좋은 연극이 무대에 올라갈 기회가 사라졌어.”
그제야 리건 톰슨은 자신을 성찰하고, 헛된 욕망으로 소비했던 인생을 반추한다. 이러한 내면의 변화는 잔잔한 첼로 음색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자신, 그리고 무명배우가 읊어대는 연극 대사로 은유된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로,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며 삶의 아픔에 눈을 뜨게 한다.
내일 그리고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정해진 시간의 마지막 음절까지
하루하루 살금살금 기어서 가고
그리고 우리의 모든 과거의 일들은
죽음으로 가는 길을 비추어왔다
꺼져라, 꺼져라
인생이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일 뿐
뽐내고 떠들어대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없이 사라져버리는
가련한 배우에 불과하다
인생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한 바보의 이야기일 뿐이다.
- 영화 속 대사 중에서
인생의 가장 큰 동기는 기쁨과 그 결과로 얻어지는 행복,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가치를 아는 것에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영화의 주인공 리건 톰슨처럼 자신을 잃어버리고 헛된 꿈을 위해 삶을 소모하게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끝내 성공의 집착을 끊어내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그를 연호하고 그를 위해 손뼉 친다. 그를 영화 속 ‘버드맨’이 아니라 진정한 배우로 인정한 것이다. 그는 그 순간 최고의 행복을 만끽하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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