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노현희 배우 - 꽃 대신 라면이 좋아

이동권 2022. 10. 27. 22:44

노현희 배우

 

노현희가 SBS 드라마 <당신의 여자>에서 마동희로 분했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눈치 없고, 현실 감각 부족한 모태솔로 역할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역시 배우였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감칠맛 나는 노처녀 연기였다.

시작부터 <당신의 여자> 얘기를 꺼낸 이유는, 노현희에게 덧씌워진 이미지 때문이다.  노현희 배우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비롯해 드라마, 스크린, 무대를 오가며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여 왔다. 하지만 그의 삶은 오랫동안 배우로서 보여준 행적보다 성형과 이혼이라는 키워드에 저당 잡히고 말았다.

<당신의 여자>는 노현희가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세상과 마주하도록 도와준 작품이다. 이후 노현희는 ‘성형 아이콘’에서 벗어나 다시 세상에 당당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현장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따로 운동하거나 건강관리를 하지 않아요. 무대에서 뛰어다니는 게 에너지원이죠.”

그는 드라마 <당신의 여자> 종영 후 젊은 배우들과 함께 극단 ‘배우’를 창단했다. 물론 연기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후배들을 돕는 게 우선이었다.

말이 그렇지, 극단 운영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배우만 있다고 극단은 운영되지 않는다. 연습실부터 기술 전담 인력까지 재원이 뒤따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공연이 잘 안 되면 문 닫을지 몰라요.(웃음) 극단 ‘배우’는 2013년 6월 25일에 창단했어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지내다보니 학교 공부만으로는 부족한 게 많아요.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해도 나와서 연극을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지속적인 시간과 기회를 후배들에게 주고 싶었어요. 또 제 텃밭을 만들어서, 하고 싶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아니나 다를까, 배우들은 폐주차장 같은 곳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연습을 했단다. 또 노현희는 행사나 공연에서 버는 돈을 모두 극단에 투자했고, 배우들도 알바로 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있다. 연극 팬들의 열띤 응원이 절실하다. 

“아직은 지인들이 티켓을 사주는 것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어렵고 열악하게 공연을 올리고 있지요. 공연할 때 꽃 사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꽃 대신 라면이 좋아요. 한 번도 연예인이라는 생각으로 살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연극배우로 활동했고, 지금도 그래요. 연극을 하지 않으면 윤택하게 살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이 더 행복해요.” 

많이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은 어쩌면 쉽다. 없는 가운데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 어렵다. 그런 사람은 대부분 삶의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인생의 진짜 쾌락은 서로 돕고 나눌 때 증가된다는 사실을. 노현희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노현희에게 성형 문제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노현희에 대한 세간의 관심사는 대부분이 거기에 쏠려 있다. 노현희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지난 과오일 수 있어요. 처음에는 욕심도 있었어요. 우리나라가 외모지상주의다 보니 미인의 기준과 맞추고 싶었고, 이미지 변신도 하고 싶었죠. 하지만 성형 부작용으로 신체 기능까지 손실됐고,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는 수술까지 받게 됐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시련을 견디는 힘이 생겼고, 성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성형 캠페인까지 하게 됐지요. 성형캠패인은 저에게는 성형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키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에요. 그래도 고통 당한 이들을 도와주는 일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소명의식을 느껴요. 성형이 잘못돼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남자친구와 헤어지거나 자살하기도 하지요. ‘렛미인’이라는 프로그램이나 과대광고 때문에 성형이 잘된 경우만 봐서 그렇지 수술하다 죽은 사람도 많아요. 그래도 죽으면 병원과 합의하고 말아요. 일반인이 병원과 싸우기 힘들기도 하고, 어디 가서 성형수술 받다 죽었다고 얘기하기도 어렵죠. 스튜어디스를 꿈꾸는 20대 학생이 있었는데 눈 밑에 지방을 제거하려다 시력을 잃었고, 재수술하면서 근육이 잘려 눈을 감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노현희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누추한 곳까지 찾아와 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담담하게 삶을 설계했다. 딱히 뭐라고 정해진 것은 없지만 지향만은 확실하다.

“공연이 잘 돼서 극단 배우가 문 닫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흑백 TV시절에 했던 ‘전우’라는 작품이 뮤지컬로 만들어졌는데 거기에 출연하고 있어요. 예전 TV에 출연했던 선생님들이 다 나와요. 80대 선생님들도 계세요. 이 작품도 잘 됐으면 좋겠어요. 의미 있는 작품을 많이 알리고 싶어요. 좋은 역 나쁜 역 가리지 않아요. 공연을 해도 출연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아요. 좋은 작품인데도 극단 사정이 어려운 곳이 많거든요. 저는 ‘겪어보자’는 주의가 있어요. 세월이 흐르다보면 더 좋은 작품을 고르는 해석능력도 좋아질 거예요. 경조사도 그렇고 힘들어 하는 분들을 더 많이 찾아가는 성격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