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인 모순을 깨뜨린다. 뜨겁고 자극적인 이미지로 조롱하고, 강렬하고 위트 있는 소재로 인간사(事)를 비튼다. 반대로 강렬한 충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듯 황홀경을 조장하고, 초점을 맞춘 렌즈의 강한 집광처럼 뇌리를 자극한다. 이토록 선명하게 시선을 끌고, 돌올하게 떠오르는 작품이 있을지 의문이다.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물방울무늬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공황장애로 강박과 환영의 두려움에 시달렸지만, 그러한 정신의 고통을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실험과 파격으로 풀어내면서 세계 미술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녀의 작품은 선명한 채색과 수많은 물방울무늬 때문에 눈을 어질어질하게 하고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오래 보고 있으면 자신의 내면세계, 아니 이상한 나라 엘리스에 간 것 같은 착각에 빠뜨릴 정도다.
물방울무늬는 모양이나 느낌 그대로 그녀의 상태를 대변한다. 그녀는 원래 예술가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벽면을 타고 끊임없이 증식해가는 하얀 좁쌀 같은 것들을 벽에서 끄집어내 스케치북에 옮겨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하얀 좁쌀(물방울무늬)은 그녀를 대변하는 상징이 됐고, 그녀는 평생 자신의 일관된 입장을 고집스럽게 형상화해내면서 세계인의 인정을 이끌어냈다.
쿠사마 야요이의 물방울무늬에 대한 강박은 관람객에게 그대로 전이된다. 보는 이의 시선을 현실 너머의 세상까지 확장시키면서 희열과 희망을 품게 한다. 또 매일 살풍경이 연출되는 야만스럽고 파괴적인 우리 사회의 열기도 누그러뜨린다. 자신의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미술 행위가 나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도구가 된 셈이다.
그녀는 1957년부터 행위예술에서 회화, 설치미술, 문학, 영화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거울과 형광등을 이용한 환경 설치미술, 온몸에 도트 무늬를 찍는 보디 페인팅 페스티벌, 영화 <쿠사마의 자기소멸> 제작, 수많은 소설과 자서전 집필 등 다방면에서 자신을 표출하고, 사람들과 소통해왔다.
쿠사마 야요이는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남근 구조물로 남성 위주의 미술계를 정면으로 비판한 점이다. 그녀는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이 여성이자 비서구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했다. (그래서 더욱 미술계를 날카롭게 관찰하고, 비평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때부터 그녀는 남근을 작업을 소재로 차용해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만든 남근은 포경이 된 생식기로, 개불(해산물) 모양에 가깝다. 남근에 그려진 물방울무늬는 성병을 상징한다.
그녀는 1962년 <축적>연작을 통해 수백 개의 부드러운 남근 조각들로 가구들의 표면을 덮은 작품을 발표했다. 이어 1964년에는 작품 <여행하는 삶>을 통해 남근 주제를 더 확장시켜 끝이 뾰족한 스틸레토 구두에 끼워 넣거나 사다리를 덮어 씌웠다. 당시 팝 아티스트로 명성을 날리던 톰 웨설먼과 앤디 워홀 같은 작가들을 비꼬기 위해서다. 이어 1965년에는 <남근상 들판> 연장 중 하나인 <무한한 거울 방>을 발표했고, 1969년에는 <죽은 자를 깨우는 대주연>이라는 누드 해프닝을 선보였다.
국내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진화랑 입구에 가면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호박>이 있다. 언제든 진화랑을 찾으면 그녀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 전시장 샵에는 그녀만의 동그란 토트를 활용한 상품과 사진도 관람할 수 있다. 진화랑은 그녀의 작품을 유일하게 한국에 보급하는 갤러리로, 한국과 일본의 미술을 교류를 확대시키는 데 일조해왔다.
쿠사마 야요이는 누구?
쿠사마 야요이는 1929년 일본 나가노 미츠모토시에서 태어나 1952년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미술가로 활동했다. 그녀는 이 전시를 시작으로 망과 점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이름에 전 세계에 이름을 각인된 것은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였다. 이를 시작으로 1998년 대규모 회고전 'Love Forever: Yayoi Kusama, 1958-1968'를 LA주립 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미네아폴리스 워커아트센터, 도쿄 현대미술관 등에서 순회 전시하며 독보적인 미술가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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