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미술과 인물

노사나 상묵 '천년의 소리, 목어'전 - 목어 울리는 산사

이동권 2022. 10. 13. 23:09

노사나 상묵 스님의 목어


따닥따닥. 절도 있는 두들김소리가 사찰에 퍼진다. 소리는 날카로운 비명처럼 아프게 들린다. 왜일까. 사찰에 가면 유난히 물고기 모양의 조형물이 많다.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의미다. 목어 소리는 다독다독 가슴을 치는 훈계다. 

때마침 경내 연못에서 요란한 물소리와 함께 은빛 비늘을 번뜩이는 잉어가 머리를 내밀고, 시원한 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어대다 사라진다. 

산사의 고요를 깨뜨린 주범은 목어(木魚)다. 목어는 잘 마른나무를 깎아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고, 속을 파낸 뒤 안료로 색을 입히면 완성된다. 목어는 사찰에서 얘기하는 사물(四物) 중 하나다. 사물은 범종, 금고, 은판, 목어를 말하며, 종각이나 누각에 걸어 놓고 예불할 때 사용된다. 

목어의 종류는 두 가지다. 하나는 머리와 꼬리가 모두 물고기인 ‘어두어미’형이고, 또 하나는 머리가 용인 ‘용두어미’형이다. 목어는 모두 길쭉한 모양이었지만 지금은 긴 모양과 둥근 모양, 두 가지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둥근 모양의 목어를 ‘목탁’이라고 해 염불과 독경, 예불을 할 때 사용한다. 

긴 목어는 지금도 목어라고 부른다. 목어는 경책으로 속이 빈 부분을 때려 소리를 낸다. 경책은 스님들이 앉아서 참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스님의 어깨를 치는 긴 막대로, 목어를 치는 이유는 경책으로 스님의 어깨를 치는 이유와 똑같다. 목어는 또 재와 염불 등 불교의식 때도 사용된다. 

노사나 상묵 스님은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목어 생각에 붓을 놓았다. 스님은 1988년 걸망을 메고 지리산 화개골에 움막을 짓고 목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끌질도 힘들었고, 모양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스님은 목어를 제작하는 공방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곳에서 제작하는 목어는 사찰에 있는 목어와 달랐다. 

스님은 전국 사찰을 돌아다니며 목어를 스케치하고 사찰마다 목어의 특징을 살려 목어 만들기에 매달렸다. 

노사나 상묵 스님은 “목어는 불교문화이긴 하지만, 우리 민족의 삶 속에 녹아있는 생활문화이고, 그 자체가 하나의 조형물이자 예술품”이라며 “꼭 수행하는 곳, 사찰에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소개했다. 이어 “우리 불교문화 속으로 파고든 목어의 의미가 일반 대중에게 더 친숙하게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생각으로 목어를 만들며, 끌질을 계속해나가고자 한다”면서 “어디에서나 목어 소리가 청아하게 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목어가 대중화됐으면 한다”고 소원했다.  

 

노사나 상묵 스님의 목어


노사나 상묵 스님의 회화 작품을 소개하는 <산사에 눈이 내리면>전도 다른 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렸다.

하얀 눈이 내린 산사는 고요하다. 또골또골 여문 별들이 쉴 새 없이 반짝이고, 얼은 듯 녹아 흐르는 시냇물이 희롱희롱 흐른다. 잎이 없는 나무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숨을 쉬고, 바람은 검불을 날리며 흐느적흐느적 지나간다. 

스님들의 굳은 표정엔 비장감이 감돈다. 침울한 적요가 내리누르는 세상, 오직 시간은 공양과 수양만을 허락한다. 어딘가로 발길을 돌리는 스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모두가 인간의 참된 마음을 흐리게 만드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어내는 과정일 것이다. 

예민한 감각과 너그러운 정서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노력한다고 쉽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자신을 내던진 도야와 정진, 인내와 성찰이 뒤따를 때 체득된다. 수행을 쌓는 일은 아무리 각오를 단단히 해도 견뎌내기 힘든 일이다. 일상이 수양 도상이 아니면 괴로움만 낳을 뿐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노사나 상묵 스님의 얼굴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고행의 세월이 남긴 훈장 같았다. 

 

 

노사나 상묵 스님 회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