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적이다. 피가 뚝뚝 떨어진다. 시종일관 침울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전시장을 질식시킨다. 약간의 쇼크가 가슴을 뒤흔든다. 껍질을 벗겨내고 잘라낸 고기 부위는 다름 아닌 인간의 얼굴. 한효석 작가도 그림을 그리면서 무척 피로하고 고달팠을 것 같다. 보는 것만으로 힘든 그림이다.
해부학 도감에서 보는 사실적인 그림 정도로 치부할 작품이 아니다. 우리도 알고 보면 피와 살과 근육으로 구성된 동물일 뿐. 겉으로만 보면 매일 식탁에 오르는 소, 돼지, 닭고기와 다르지 않다. 다만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점은 영혼 혹은 지성, 로고스가 있다는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욕망에 사로 잡혀 짧은 삶을 동물처럼 보낸다. 전시장에 걸린 커다란 돼지와 다를 바가 없는 삶이다.
한 작가의 작품에는 얼굴 피부를 다 벗겨낸 것처럼 표현된 얼굴 회화도 있다. 언뜻 봐도 참혹함과 잔인함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그림이다. 그러나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생각은 달라진다.
그는 학교에 다닐 때 자신의 작품이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수업 참여를 반려시키거나 일부러 학점을 낮게 주는 교수를 만났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그에게 보다 더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게 했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과연 예술의 영역은 어디까지 일까. 그는 이 질문에 매달려 노동하듯이 작업했고, 그 결과물을 전시에서 선보였다.
한효석 작가는 인간과 우리 사회를 냉정하게, 매우 찬찬히 바라본다. 인간의 원초성을 보여주는 얼굴 그림과 여러 마리의 돼지를 한 공간에 집어넣고 폭력과 억압의 살풍경을 연출하면서 자본주의적 욕망을 정당화하는 전시장 밖 도시와 대조시킨다.
살갗은 벌거벗겨지고, 살점은 떨어져나갔다. 속살이 드러난 이마와 눈, 턱은 서로 갈아지고, 찍히고, 터져서 뼛속까지 아린다. 벌겋게 부은 근육에서 진물이 흐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림 속 인간은 인내한다. 슬픔이 가득한 눈빛으로 관람객을 쳐다본다.
그의 작품 ‘감추어져 있어야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는 흉측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여리고, 부드럽고, 무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한치의 꾸밈도 없는 사실 혹은 인간의 본질을 은유하기 때문이다.
한 작가는 속살을 드러낸 인간을 통해 온갖 욕망에 사로 잡혀 사는 인간의 모습을 투영한다. 아름다운 여인의 살점을 더덕더덕 드러내면서 권력과 쾌락을 지향하는 인간의 욕망을 탐색하고, 거기에서 허덕이는 자신을 발견하도록 만든다. 정면을 응시하는 그림 속 인물과 눈을 마주치면 스스로 외면하거나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의 본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뜨끔해질 것이다.
돼지는 애처로이 울부짖는다. 통증이 느껴진다. 숨을 쉴 때마다 고통스럽게 헐떡이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어떤 돼지는 아주 자그마한 기쁨마저 잊어버린 듯 삶의 의미를 상실한 표정이다. 머리통을 무지근하게 눌러 조여오는 그림이다. 딱 우리네 삶의 애환 그대로다.
한효석 작가의 작품 ‘자본론의 예언’은 동물적 존재로 인간을 탐구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태어나고 죽음을 당하는 돼지를 보면서 이들의 자유에 대해 고민했다. 또 죽음을 통해 자유를 얻게 되는 우리 안의 돼지처럼 인간 또한 자본주의라는 틀에 갇혀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틀 안에서 낙오되고, 착취 받는 민중을 돼지로 빗대어 형상화했다.
작업은 직접 돼지 농장에서 생활하며 진행했다. 자본주의 논리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어떠한 애환과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이 더욱 큰 의미를 갖는 이유다.
한효석 작가의 작품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는지, 그 과정을 직접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예술가는 살면서 정신과 육체, 물질적인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그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을 단련하고 혹사시킬 필요도 있다.
그의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아주 쉽지만 생소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당신은 태어나서 무엇을 위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죽음에 이르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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